[주말의 새영화]그린 마일"그래도 삶은 아름다운거야"

  • 입력 2000년 3월 2일 19시 57분


‘그린 마일(The Green Mile)’은 ‘쇼생크 탈출’(1994년)의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쇼생크 탈출’ 원작자인 스티븐 킹의 또다른 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 둘 다 감옥을 배경으로 삼았고, 백인과 흑인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쯤 되면 ‘그린 마일’도 ‘쇼생크 탈출’처럼 자유의 환희가 정점에 놓이는 탈옥영화가 아닐까 추측하게 되지만 전혀 다르다. ‘그린 마일’은 영혼의 소통,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비극성을 묵직하고 느린 템포로 그린 영화다.

1935년 미국 루이지애나의 교도소. 사형수 감방의 간수장 폴(톰 행크스 분)은 ‘그린 마일’이라 불리는 초록색 복도를 거쳐 사형수들을 전기 의자가 놓여 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데려가는 일을 맡고 있다. 사형수들을 위해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쓰던 폴은 어느 날 거구의 흑인 사형수 존 커피(마이클 클락 덩컨)와 만난다. 순박한 인상의 커피가 폴에게 악수를 청하는 장면에서부터 ‘과연 그가 백인 소녀들을 살해한 잔인한 범죄자 일까’하는 의문이 던져진다. 고통을 치유하는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있는 커피는 폴의 방광염을 치료해줄 뿐 아니라 죽어가는 교도소장의 아내에게서 암세포를 빨아내기도 한다. 커피와 깊은 유대를 맺게 된 폴은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지만 폴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표면에 드러나진 않지만 이 영화에는 종교적 은유가 가득하다. 이니셜 ‘J. C’가 예수(Jesus Christ)의 이니셜과 같은 흑인 존 커피는 기적을 행하고, 죄없는 자신을 처형한 사람들을 용서하며 죽는다. 사형을 집행할 때 전기가 잘 흐르도록 사형수의 정수리에 물에 적신 스폰지를 올려놓는 것조차 지옥에서 행해지는 세례처럼 느껴진다.

인상적인 대목은 폴이 얻은 속죄의 대가로 얻은 ‘영생’. 1월 개봉됐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자신의 불멸성을 저주했던 로봇처럼, 고통스러운 나날을 감내해야 하는 폴의 운명 역시 덧없어 보이는 존재의 소멸과 삶의 유한함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몇몇 대목들이 부담스럽지만 선악이 분명한 캐릭터들의 묘사가 너무 단순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맹점은 무려 3시간이나 되는 긴 상영시간. 등장인물 설명에 초반 1시간이 걸리고, 생쥐 징글스의 에피소드도 너무 길다.

사형집행 장면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역겹다. 그러나 조바심을 버리고 보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죄수들의 고통, 심지어 권태까지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 톰 행크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4개 부문 후보작. 18세 이상 관람가. 4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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