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영어를 공용어로?

  • 입력 2000년 3월 1일 19시 31분


세계화 인터넷시대를 맞아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주장까지 나와 논박이 이어진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남쪽의 영어남용 외래어남발이 ‘한심하다 못해 처참한 지경’이라고 자못 흥분한다. 그 쪽 방송이 최근 ‘안타깝기 짝이 없는 우리말 망치기’라고 예시하는 것들이 흥미롭다. 우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을 DJ, JP 라고 ‘영어로 창씨개명’을 해서 부른다. ‘재벌들도 LG니 SK니 하는 이름으로 바꾸고 두루넷 마트랜드 등 외래어 이름이 갈수록 는다.’

▷북측의 분개는 이어진다. “잡지도 뉴스메이커나 뉴스피플이다. X세대 N세대라는 해괴망측한 이름을 다는가 하면 외국 성씨를 수입한다. 조기 영어교육이랍시고 어린이들의 혀가 꼬부라지고 있다. 양키말에 찌들고 왜말에 오염되고 잡탕말과 한자가 범벅이 돼 뒤죽박죽이 된 지 오래다. 외래어와 한자가 80%가 넘는 남한의 국어사전은 ‘외래어사전’이요, 우리말사전은 ‘남의 말 사전’이다.”

▷일본에서는 1872년부터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이가 있었다. 아예 일본어를 잊고 한자도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 일본에서 100년이 지난 1970년대에는 정반대로 ‘제1외국어로서의 영어 폐지’를 주장하는 히라다(平田)안이라는 것이 나왔다. 경제대국이 되면서 ‘해도 해도 잘 안되는 영어를 포기하자, 외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자’는 식의 오만이었다.

▷영어나 외래어에 관한 인식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것인지를 북한의 시각과 일본의 예에서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소설가가 영어 공용어화를 제창한 이래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영어 구사력이 바로 미래의 경쟁력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과 ‘영어공용’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영어공용은 시나 소설을 영어로 창작하고, 국무회의나 선거유세가 영어로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관공서 문서도 영어로 작성되고 심지어 애국가도 영어로 불러야 한다.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방법을 개선하자는 뜻이 공용어화로 빗나가서는 안된다.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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