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 완화 및 빈민층 해소는 중요한 과제다. 또 기업과 기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찾고 기여를 아끼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문제를 떠나서라도 기업이익의 적절한 사회환원은 소망스럽다. 김대통령이 말한 대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 그들의 구매력이 높아져 기업의 제품판매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계의 빈민지원 논의가 대통령의 ‘한 말씀’에 끌려가는 양상을 보이는 현실은 역시 ‘한국적’이라고 할 만하다. 김대통령은 “정부가 기업에 (빈민지원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전제했지만 전후(前後)의 발언에는 재계의 실토처럼 ‘거역하기 어려운 압력’이 들어 있다. 그 날 그 자리(9일 청와대)에서 정부는 3380개 대기업에 대한 금융감시망 구축방침을 발표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대통령에 이어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과 이기호(李起浩)대통령경제수석 등의 후속 유도발언도 이어졌다. 대기업들로선 이래저래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걱정스러운 점은 빈민지원에 나서지 않는 대기업은 악덕기업 취급을 받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이 증폭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빈자에 대한 직접적 지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도움을 주더라도 그 효과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생산적 방식이 돼야지, 생계비 보조 등 일과성(一過性) 지원이 반복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 기본적으로 빈민의 자활과 현실 탈피를 돕는 일은 정부 정책의 몫이다. 또 자발적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세제 등 제도개선을 비롯해 기부인프라를 구축하는 일도 정부 몫이다.
한편 정부측은 대기업에 대한 빈민지원 권유 발언을 하면서 총선에서의 표계산까지는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