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비전21세기]전장엔 '사이버 전사들'

  • 입력 2000년 1월 5일 08시 31분


육군 전쟁 대학의 사령관인 로버트 스케일스 2세 소장은 정기적으로 학생들, 정치인들, 외교 관계자들, 그밖의 방문객들을 이끌고 게티스버그의 전쟁터를 안내한다. 게티스버그 전투가 벌어졌던 것은 136년 전이지만, 스케일스 장군은 이 전투가 오늘날에도 전쟁의 기술에 대해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교훈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기술이 현대 전쟁에서 인간적인 면을 빼앗아 버리고, 게티스버그의 잔인함과 살육을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티스버그에서는 3일간의 접근전이 벌어지는 동안 모두 5만 1000명의 병사들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거나, 실종되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전쟁의 잔인함을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만들어 버린 바로 그 기술이 살육을 더욱 더 쉽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는 전쟁의 개념과 병사들의 모습이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레이저에 의해 유도되는 미사일과 장거리 무기들로 인해 먼 거리에서 훨씬 월등한 화력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대규모의 군대가 적과 마주보고 전열을 가다듬는 모습은 사실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군사 전략가들은 걸프전이 마지막 구식전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걸프전에서는 세계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첨단무기가 많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병사들도 50만 명이나 전장에 투입되었었다. 반면 지난 18개월 동안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인 병사를 단 한 명도 지상으로 투입하지 않은 채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이라크를 습격하고, 코소보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자신이 속해 있는 대열의 측면을 보호하고 고도가 높은 지역을 사수해야 한다는 게티스버그의 교훈은 미래에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최전선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성이 순식간에 정보를 전달해주고, 먼 거리에서도 폭탄과 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이 가능한 시대에 병사들을 한 곳에 집결시키거나 고도가 높은 지역을 사수하려고 노력한다면 몇 Km나 상공에 떠 있는 폭격기의 손쉬운 과녁이 될 뿐이다.

그러나 신기술은 공군력의 승리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는 지상전의 양상도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해병대는 보통의 정찰대처럼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적지 깊숙한 곳까지 정찰할 수 있는 작은 곤충처럼 생긴 로봇을 이미 시험하고 있다. 육군은 또한 앞으로 몇십년에 걸쳐 위성과 지상의 무인 장치 및 탐지기를 이용해 세계적인 통신 네트워크와 연결된 디지털 부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계획이 완성되면 최전선의 부대가 허리띠나 단추에 설치된 소형 컴퓨터와 눈에 부착하도록 되어 있는 장치를 통해 목표의 좌표와 정보보고를 수령하고 명령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게티스버그 근처의 자그마한 지역을 방어하는 데는 무려 9만명의 북군 병사들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는 700∼800명의 병사만으로 그 지역을 지킬 수 있다. 어쩌면 100명의 병사만으로도 가능할지 모른다.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미래의 전장은 텅 비어 있을 것이며, 군대는 적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싸우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무기 면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은 어쩌면 애당초 군대와 싸울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군대가 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그 상대는 테러리스트나 폭동을 일으킨 군중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의 군대는 전쟁보다 평화유지를 위한 임무나 마약 금지 임무를 더 많이 맡게 될 것이다.

노스웨스턴대에서 군대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찰스 모스코스는 군대의 이런 변화가 사회와 군부의 구분을 모호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군대는 여성과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이라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는 한편 민간인 하청업자들에게 더욱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병사들은 또한 육체적인 힘보다는 기술적인 능력을 더 많이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병사들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많고 훨씬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스케일스 장군은 “열여덟살의 나이에 보병이 될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전직 육군 탱크 지휘관으로서 현재 군사문제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는 존 힐렌은 “군대 내부의 전문계급은 언제나 자유로운 사회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여겨져왔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지상에서 전쟁을 벌이는 전투부대가 애당초 군대에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하지 않고도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정치가들에게는 목숨의 희생 없이 국가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매우 매혹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은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여전히 용기와 지도력을 가진 개인들이다. 퇴역 육군 준장인 후바 와스 드 체게는 전쟁은 국가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 도덕적 문제라면서 “만약 단순히 기계와 기계가 싸운다면 전쟁의 의미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specials/010100mil-fite-mye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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