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이끈 潮流]경제학/ 유토피아의 길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경제학이 현실경제의 변화를 촉구하거나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20세기의 경제학은 사회주의국가의 탄생과 몰락, 제1차(1930∼41)와 제2차(1974∼99)의 세계대불황을 계기로 크게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1917년 사회주의혁명이 발발했을 때, 여러 의문들이 쏟아졌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성숙한 자본주의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왜 후진국에서 혁명이 일어났는가, 강력한 자본주의국들로 둘러싸인 일국 사회주의가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 일당 독재가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이라는 유토피아를 달성할 수 있을까.》

옛소련 공산당은 유토피아 달성을 위한 과제들을 과학적으로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가지지 못했고 자국의 안전을 외교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세계공산주의운동을 이용했다. 물론 생존한 70여년 동안 사회주의권은 경제를 계획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크게 향상시켰고, 자본주의의 지배자들(대자본가, 정치가, 국가관료)에게 ‘대안’을 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개선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소련식 사회주의는 결코 자본주의 이후의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유토피아를 찾는 과학적 노력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1929년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가폭락으로 폭발한 세계대공황은 2차대전 발발 때까지 계속됐다.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시장에서는 항상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는 주류경제학의 가정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케인스(영국)는 소비자 투기자 기업가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함으로써, ‘자유방임’을 할 경우 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규모의 유효수요(소비수요와 투자수요)가 결코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정부가 재정금융 확대정책(정부의 공공투자, 저금리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가시켜야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이론은 2차대전 이후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와 개선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1974, 75년의 세계대공황과 그 뒤의 장기불황은 케인스이론을 경제학의 왕좌로부터 몰아냈다. 이론쪽에는 윌튼 프리드먼(미국)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오스트리아)가 등장하고 정책쪽에는 대처와 레이건이 등장했다. 케인스와는 다른 사고방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유가폭등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기업도산에 따른 실업 중 인플레이션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불황의 원인 중 임금 인상에 따른 이윤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다, 노동조합의 전투성 때문에 임금수준이 더 높아 기업이 고용을 꺼려하므로 실업이 발생한다,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규율이 해이해져 노동생산성이 낮아졌다, 투자에 대한 세금이 너무 높아 부자들의 노동의욕과 투자의욕이 감소해 불황이 장기화한다는 등등,정부는 경제에 개입하지 말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또는 신보수주의가 득세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세계 각국의 개방을 촉구했고 ‘국가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증대시킴으로써 자국의 경제성장과 고용을 유지하려 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은 자본의 세계적인 자유로운 활동(즉 세계화)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후진국들은 농산물과 서비스분야에서도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유치산업을 보호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수출증대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몇몇 경쟁력 있는 나라들만이 성공할 것이므로 세계적 차원에서 불균등 발전은 심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려고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임금을 인하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는 것은 결국 국내시장과 세계시장을 동시에 축소시키는 일이다. 경쟁 심화, 시장축소로 인한 과잉투자 과잉설비 과잉생산이 불황을 장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하면서 세계정세가 안정적인 성장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990년 이후의 일본위기, 1994년의 멕시코위기, 1997년의 아시아위기, 1998년의 러시아위기, 라틴아메리카위기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생산활동에서 이득을 얻지 못한 자본이 유통분야에서 투기로 이득을 얻으려고 대규모로 갑자기 한나라에 들어갔다가 또한 갑자기 대규모로 빠져나오기 때문에, 그 나라는 경제 위기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후진국 문제는 경제학의 큰 연구과제였다. 1970년대에 유행한 종속이론은 주류 경제학의 국제경제론과 후진국개발이론을 비판했다. 신고전파 경제학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이 완전히 실현되면 선진국과 후진국은 지금의 비교우위에 의거한 국제분업에 전념함으로써 후진국은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다든지, 아니면 후진국은 선진국의 생산재와 자본을 도입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선후진국의 격차가 더욱 확대됨으로써 힘을 잃었다.

종속이론에 의하면 선진국은 후진국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후진국의 경제 잉여를 수탈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후진국에서는 저발전이 심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속이론은 여러가지 문제에 부닥쳤다. 첫째 후진국의 저발전이 오직 외부 세력 때문인가. 둘째, 선진국이 후진국으로부터 경제 잉여를 계속적으로 수탈한다면 후진국에도 ‘종속적인 발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셋째, ‘자립경제의 건설’은 세계경제를 이탈한 ‘자급자족 경제’인가.

어쨌든 종속이론은 몇몇 후진국이 신흥공업국으로 발전함으로써 세력을 잃게 되었다.

그 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후진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했지만, 선진국의 신자유주의에 압도되어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마르크스경제학은 1910년 루돌프 힐퍼딩(독일)이 ‘금융자본’을 출간한 이래 독점, 국가개입, 경제계획, 자본주의의 부패와 몰락, 제국주의에 관해 이론적 실증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1960년 피에르 스라파(이탈리아)가 상품의 가격은 생산의 기술적 조건(투입―산출계수)과 분배의 비율(임금과 이윤)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산가격모델’을 제시한 뒤, 스라파를 지지하는 신리카도학파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는 ‘노동가치’ 개념의 유용성, 전형문제, 이윤압박설, 신기술 도입 시기 등등에 관해 큰 논쟁을 전개했다.

미르크스주의자에 의하면 심층의 노동가치는 표층의 가격이나 생산가격을 생산부문의 노동과 연결시켜주며 이윤의 원천과 이윤증대 방식을 해명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리카도학파는 이윤 저하의 원인을 노동조합의 전투성에 의한 임금인상에서 찾고 있는데, 그것이 올바르기 위해서는 상품가격과 기술이 그동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야 할 것이다.

루이 알튀세르(프랑스)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이나 경제주의가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마르크스는 사회를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층위들(경제, 정치,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복합적 전체라고 보았으며 총체적 인과성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가 교호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부르조아지가 지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억압기구(경찰, 정보부, 검찰)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기구(학교, 교회, 법률, 언론, 정당)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새로운 영역으로 해방시킨 점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해체’시켜 노동자계급 투쟁의 중심성을 포기하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기도 했다.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하고 시장이 국민들의 생활을 좌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케인스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 케인스경제학은 국민경제 단위에서 자본이동을 통제해야만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고용을 확대할 수 있으며, 복지국가를 다시 형성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경제학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1인1표가 지배하지 않고 1원1표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 영국처럼 무료일 때는 모든 사람이 병원의 혜택을 보지만 유료가 되면 돈 없는 사람은 병원의 혜택을 볼 수 없고, 학교도 마찬가지다.

21세기는 1974년 이래 장기불황을 극복해야하는 과제, 복지국가를 다시 세워야 하는 과제, 그리고 경제의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하는 과제를 물려받게 됐다.

김수행 <서울대교수·경제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