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도전21]고려대병원 유전자치료팀

  • 입력 1999년 12월 7일 19시 48분


고려대 안암병원 3층 옥탑의 생명과학연구소는 늘 컵라면 냄새가 진동한다. 구석엔 넥타이 20여개가 돌돌 말린채 처박혀있다. 걸핏하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을 새는 연구원들에게 연구소는 ‘작은집’.

겉보기와 달리 이 곳은 의학분야의 최첨단 현장 중 한 곳이다. 그 최첨단은 세포의 기본단위인 DNA의 구조를 바꿔 질병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

이곳 보스인 이경일소장(분자생물학)과 비뇨기과 천준, 산부인과 김영태교수로 이뤄진 ‘고려대안암병원 유전자치료팀’은 최첨단분야에서도 상당히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소장은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와 미국 스토니블룩의 뉴욕주립대학, 천교수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학, 김교수는 영국 글라스고대학에서 튼튼한 기본기를 익혔기 때문에 이들의 팀워크는 ‘미―영―불의 조화’로 불린다.

▼DNA와의 씨름▼

분자생물학의 발달과 함께 질병은 대부분 유전자가 고장나 생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자의 일부가 없어지거나 늘어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언젠가 몸에 병이 생긴다는 것.

신생아를 놓고 ‘이 아이는 41살 6개월경 위암에 걸리도록 DNA에 프로그램돼 있다’고 진단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96년 연구를 시작한 이 병원 유전자치료팀은 유전자의 세계 중 ‘암정복’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중이다.

그들이 암을 먼저 정복하려는 이유는 가장 질기고 변덕스러운 암세포만 정복하면 관절염 고혈압 당뇨병 치매 혈우병 등 그 밖의 질병은 같은 원리를 응용해 쉽게 치료할 수 있기 때문.

천교수는 지난해 전립선암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암유전자요법으로 미국 특허상표청으로부터 특허를 받았다. 치료유전자를 암세포 가까이 넣어 암세포 주변 세포의 면역력을 강화시키거나 암세포가 자살하도록 해 암세포만 죽이는 방식.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얻어 미국에서 약품의 독성여부를 판단하는 1상 임상시험을 마쳤으며 본격적인 치료효과를 측정하는 2상 임상시험을 11월에 시작했다.

그는 또 마늘의 항암성분를 이용한 면역요법과 유전자요법을 접목시켜 방광암을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중. 2000년 4월경 미국 비뇨기과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교수는 4월 가톨릭의대 생화학과 주대명교수팀과 함께 개발한 유전자치료제 ‘메드타이거’로 암을 찾아가는 운반체에 암치료유전자를 심어 쥐의 암세포를 죽이는 데 성공, 곧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김교수는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서 암세포를 제거하고 대신 암치료유전자를 실어 암세포가 모여 있는 곳에 보낸 뒤,이 암치료유전자가 암이 커지는 것을 막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중.또 여기에 ‘자살 유전자’를 집어 넣어 암세포가 스스로 죽게 만드는 방법도 연구중이다.

세 교수는 각자 전문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수시로 만나 연구성과를 공유하며 시너지효과를 올리고 있다. 비(非)의사, 분자생물학자인 이교수는 김, 천교수에게 ‘실험실 지식’을 지원하고,두 의사는 이교수를 진료실로 불러 ‘현장교육’을 시킨다.

▼내몸을 시험해 달라!▼

천교수가 전립선 암치료요법으로 미국 특허를 받고 동물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려대안암병원에는 임상시험 대상이 되겠다는 말기 암환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병을 고쳐도 유전자조작 때문에 다음 세대에 어떠한 형태로든 돌연변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윤리적 문제, 실험중인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의 보상문제 등에 대한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아 아직은 임상시험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약을 하나 개발해도 환자에게 투여하려면 9년정도 실험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제 3년이 지났을 뿐이어서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릅니다. 그러나 유전자치료가 모든 사건을 통틀어서 21세기의 하이라이트로 기록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김영태교수)

▼해외 유전자치료/미국등 20여개국 이미 임상실험▼

미국을 중심으로 20여개국에서 이미 유전자치료법의 임상시험을 시작한 상태.

미국 국립 암연구소의 로젠버그박사팀은 인터루킨,종양(腫瘍)괴사인자 등을 이용해 피부암치료를 시도하고 있으며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린 암센터의 버나드 갠스배처박사팀은 인터루킨과 감마인터페론을 이용해 피부암 및 신장암 치료를 실험하는 등 5000여명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중이다.

2, 3년 후에는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유전자치료시장을 놓고 특허 경쟁이 치열해지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

연구자들은 2003년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게놈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지도가 완성되면 임상시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자지도가 완성되면 △환자의 면역체계가 엉뚱하게 치료유전자를 파괴하고 △몸에 넣은 암치료유전자가 암세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 버릴 가능성 △치료유전자의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 등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도움말〓고려대병원 유전자치료팀, 삼성서울병원 유전자치료연구센터)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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