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전경련이 가야할 길

  • 입력 1999년 10월 18일 19시 55분


대우사태의 불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 옮겨 붙었다. 대우그룹이 간판을 내리게 됨에 따라 오너 자격으로 전경련 회장직을 맡았던 김우중씨가 사의를 표명했다. 회장단 회의에서 후임자가 선임될 때까지 회장직을 맡아줄 것을 간청하고 있으나 회장 자리가 바뀔 것은 확실하다.

전경련은 61년 8월 자유시장 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한국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한다는 설립취지로 출범했다.

▼새 리더십 필요한 때

현재 회원은 65개 업종별 단체와 380여개 대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단법인 형태를 띠고 있다. 혁명정부의 재벌탄압을 회피하기 위한 정권협력 기구로 설립됐지만 외양으로는 경제의 국제화 추진이라는 장기적 안목의 목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설립취지와 달리 회원사들이 조성한 불법 비자금을 정치권에 상납하고 그 대가로 특혜를 챙기는 로비창구 역할에 치중함으로써 정경유착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정경유착은 관치금융으로 이어져 재벌이 금융기관의 자금을 독점함으로써 차입 경영에 따른 재무구조 부실과 함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다. 불경기가 지속되는 동안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이 한꺼번에 도산했고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전경련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 단계에서도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대규모 사업교환(빅딜)이라는 솔로몬의 지혜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골칫덩어리를 떠안아서 재벌들 사이의 반목만 키워 놓고 말았다. 빅딜은 원래 사업전망이 불투명해 독자 생존이 어려운 석유화학 중공업 및 전자와 자동차부문이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반도체가 빅딜 대상에 포함되었고 정부의 의도를 간파한 전경련이 자율조정을 자처하고 나섬으로써 빅딜 자체를 반대했던 LG그룹에 돌이킬 수 없는 배신감을 안겨주고 말았다. 더구나 얼마 안가서 반도체 가격 폭등사태가 발생해 LG그룹의 깊은 원망은 단시일내에 해소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재계나 정부 모두 전경련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재계와 공식 대화 채널이 필요하고 재계는 개별적으로는 나서기 싫은 일에 전경련이 대신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다.

신임 회장 후보로 거명되는 인사는 주로 2세 경영인이거나 전문경영인이다. 피땀으로 기업을 일으켜 세운 창업주에 비해 2세 경영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전문경영인 역시 오너로부터 독립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가 회장이 되든지 새로운 리더십 스타일이 요구된다.

▼ 경제의 국제화 앞장을

이러한 상황에서 신임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경련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재벌의 로비창구로서 정경유착의 표상이 되었던 과거를 깨끗이 정리하고 경제의 국제화 촉진이라는 당초 설립취지에 부합하는 새로운 운영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경영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무엇인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개별 기업이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분야로는 기업투명성 납세의식 인력개발 기업윤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2세 경영인 가운데 대부분이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당한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한 자질이 부족한 2세들이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고 무모한 확장경영을 시도하다 패가망신하는 사례도 많았다.

2세 경영인이나 전문경영인이 신임 회장에 취임하는 경우 회장 스스로가 자신과 관련 있는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정당한 납세의무를 이행하고 인재를 육성하여 경영을 맡기는 관행이 정착되도록 이끌기 위해서는 회장 스스로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시민단체와 말꼬리잡기 다툼이나 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대안을 개발해야 한다. 전경련이 이권만 챙기는 로비단체라는 오명을 씻고 글로벌 스탠더드의 전도사로서 거듭나야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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