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법감청 뿌리 뽑으려면

  • 입력 1999년 10월 18일 19시 02분


야당의원의 ‘국가정보원 감청기구 및 감청실태’ 폭로로 여야간 정치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정기국회 이래 불법감청과 감청남용 문제가 거듭 논란의 대상이 돼 왔으나 정작 방지대책에 대해서는 아직도 원점만 맴돌고 있다. 이제 도청 감청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번에 제기된 국정원의 불법감청 의혹을 규명하는 작업과 함께 감청문제 전반에 관한 근본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도청 감청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잘못된 제도나 관행을 있는 그대로 들춰내고 그것을 바로잡는 구체적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등 관련법의 개선방향은 대체로 윤곽이 잡혀 있는 상태다. 가령 법원영장 없이 가능한 ‘긴급감청’ 시간(48시간)의 단축 또는 이 제도의 폐지, 감청대상 범죄의 축소, 감청기간(최장 6개월, 국가안보목적은 1년)의 단축, 휴대전화 통화내역조회와 E메일 열람에 대한 엄격한 규제 등이 그것이다.

여야 3당은 이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고 정부도 개정시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더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법개정을 매듭짓기 바란다. 대법원이 지난주 국회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밝힌 개선방안도 불법감청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즉 감청을 완료하고 난 뒤 당사자에게 감청사실을 통지해주도록 하는 입법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통지는 감청을 실시한 수사기관보다 영장을 발부한 법원이 그 기관의 감청완료 보고를 받은 뒤 통지해주는 것이 신뢰도가 높은 합리적 방안이라고 본다.

그러나 감청문제는 법개정을 통한 제도개선만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다. 아무리 법이 잘 돼 있어도 이를 운영하는 측이 악용하려 들거나 무관심하면 빈틈은 있게 마련이다. 법원 영장을 받아 실시하는 ‘제도 내 감청’은 법개정으로 어느 정도 규제가 가능하겠으나 문제는 ‘제도 밖 감청’, 즉 몰래 하는 불법감청이다. 이것은 권력자나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는 사실상 막을 수 없다.

불법감청을 해서라도 증거 또는 정보를 포착하려는 결과위주의 수사풍토와 과잉충성등 잘못된 버릇이 고쳐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불법감청의 망령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반성과 감독, 인권교육을 포함한 특단의 실천방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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