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국50년 변혁50년②]작은 정부

  • 입력 1999년 9월 27일 18시 44분


중국의 개혁개방은 개인에게 자율과 가능성을 부여했다. 동시에 책임과 고통도 안겨주었다.

수도 베이징(北京)에 사는 천(陳)씨는 최근 병원에서 뇌경색일지 모르니 1만위안(약 135만원)을 미리 내야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연해졌다. 직장에 다닐 때는 ‘단웨이(單位·소속직장)’가 치료비를 내줬다. 그러나 지금은 실업상태. 전액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1만위안은 실업수당 3년분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의료든 주택이든 교육이든 그 비용을 모두 단웨이가 부담했다. 그러나 개혁개방과 함께 ‘무료 서비스’가 끝나고 ‘수혜자 부담’으로 바뀌고 있다. 직장인의 경우도 의료비는 ‘수혜자부담 3할’에서 ‘월 50위안까지 단웨이가 부담한다’는 등으로 후퇴를 거듭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주택정책도 바뀌었다. 그동안 임대주택을 제공하던 정부가 입주자들에게 임대주택을 매입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9월에 은행대출금 상환기한을 최장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했다. 대출금리도 연 6.33%에서 5.58%로 인하했다. 매입한 임대주택은 임의로 매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공무원 바이(白)씨는 베이징 교외의 44㎡(13평) 아파트를 4만위안(약 550만원)에 사도록 권유받았다. 4만위안은 근무연수를 감안한 ‘우대가격’이지만 그는 망설이고 있다. 은행대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샐러리맨의 급여는 월 500∼800위안. 4만위안의 은행대출을 받으면 이자를 포함해 매월 400위안 이상을 내야 한다.

학비부담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학비에 기숙사비 생활보조비까지 지급해줬으나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올해초 정부는 학비 현실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베이징대 등 대부분의 대학들이 가을학기부터 학비를 50% 인상했다. 내년에도 학비인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가 졸업생들에게 직장을 배치해주던 ‘바오펀페이(包分配)’제도도 96년에 중단됐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큰 정부’를 ‘작은 정부’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생산과 분배,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관여했다. 문화대혁명 때는 머리속의 사상까지 문제삼았다. 그러나 이제 관여를 줄이고 있다. 동시에 정부의 부담도 줄이고 있다. 그만큼 개인의 부담이 커진다.

지난해 중국은 중앙부처를 40개에서 29개로 축소했다. 공무원 숫자도 올해말까지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정부 기능 가운데서도 다른 기구에 맡길 수 있는 일은 과감히 맡기고 있다. 도시가스 공급은 매기(煤氣)공사, 아파트 난방은 열력(熱力)공사에 맡겼다. 정부의 지령으로 생산을 할당하는 일도 중단했다. 이제 국유기업들도 시장상황에 따라 생산품목과 수량을 자체결정할 수 있게 됐다. 아니, 결정해야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정부의 지령을 대체할 각종 법률을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전인대는 예전의 ‘고무도장’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표결을 도입했다. 법안심의거부권도 행사해정부의독주를견제하고 있다. 법치주의의 시동이다.

전인대는 이달 초순 민영기업 설립과 운영에 관한 독자기업법과 이자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게 하는 개인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3월에는 행정기관의 처분에 대해 주민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하는 ‘행정재심(復議)법’을 제정했다.

당과 군도 개혁에 들어갔다.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 등 ‘제3세대 지도부’는 젊고 유능한 인재를 영입해 당을 ‘테크노크라트당’으로 변신시키려 하고 있다. ‘이념’만으로는 당이 존립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군은 50만명의 감군과 전문화를 서두르고 있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대비 군비 비율이 낮아졌다. 78년 GDP의 4%였던 군비가 97년에는 1%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과거 군소속이던 방위산업을 지난해 국무원 산하로 이관하고 군의 기업경영을 금지한 것도 군개혁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군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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