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진보정당과 한국정치

  • 입력 1999년 8월 30일 19시 16분


진보정당 창당추진 위원회가 연말까지 노동자 농민 빈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가칭 ‘민주노동당’을 만들기로 했다. 29일 창당 발기인 대회에는 ‘국민승리21’ 민주노총 전국빈민연합 등에서 약 2000여명이 참석해 그 세(勢)를 과시했다. 97년 대통령 선거이후 구심점을 갖지 못한 채 흩어져 있던 재야 진보세력이 전열을 가다듬고 내년 총선을 겨냥한 도약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내건 기치는 한국정당의 보수적 전통에 비추어 보면 가히 파격적이다. ‘재벌해체’ ‘군축 및 군사비삭감’ ‘실업해결 복지예산 20% 확보’ ‘국가보안법 철폐’같은 주장은 기존 보수정당의 그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런 정책들에 대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이 심판하겠지만 이제 이같은 주장이 정당이라는 정치적 통로를 통해 나오게 됐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진보정당의 출현은 과거 재야라는 이름의 ‘얼굴없는 정당’으로서 노동자 농민 빈민같은 ‘낮은 데’사람들을 대변하던 세력이 정치전면에 제도화되어 등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한 이익을 대변해야할 기반이 존재하는 한 진보정당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한 ‘제3의’ 정당이야말로 길거리의 극한투쟁을 테이블 토론으로 유도, 정치를 안정화하고 나아가 정치적 사회적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는 이점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정당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강정책을 내걸고 기존 보수 일색의 정당들과 어떤 식으로 차별화되고 소구력(訴求力)을 갖는 경쟁을 벌이느냐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소외되고 약한 이들의 작은 결사(結社)라고는 하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이 나라의 정당발전 정치개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정책의 자리에 ‘지역’만이 존재하고 정치서비스 대신 ‘부패’가 자리한 정치풍토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으로 얽히고 설킨 기존 정당에만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성을 표방한 정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진보니, 혁신이니, 노동자와 농민보호니 해서 숱한 정당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더러는 이념적 비현실성이나 급진성으로, 더러는 집권측의 견제나 압력에 의해, 혹은 진보정당 내부의 역량 미달과 유권자의 외면으로 붕괴되고 말았다. 국민회의가 신당창당 결의대회를 열고, 한나라당이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시기에 출범을 선언한 진보정당이 기존 정당과 선의의 경쟁, 설득력있는 정책대결을 통해 한국정당정치의 수준을 한차원 높이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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