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출세의 상징은 운전사가 딸린 관용차라고 한다. 자가용 차를 손수 운전하며 출근하던 공직자의 집 앞에 어느날 아침 검은색 중대형차가 와서 대기하면 동네에 소문이 난다.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관용차량 1번은 대통령이 탄다. 대통령을 지칭하는 암호가 ‘코드 원’이었던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10·26 당시 전두환(全斗煥)보안사령관은 ‘코드 원’이 유고임을 가장 빨리 보고받았다.
▽고급 옷 로비의혹에 대한 청문회가 진상을 규명하기는 커녕 여러 사람을 더 화나게 한 것 같다. 공직자와 그 가족이 해서는 안될 행동을 여러가지로 하고 다녔음이 재확인됐다. 관용차의 사용(私用)도 그 중 하나다. 이번 청문회의 핵심증인 연정희(延貞姬)씨가 고급 옷가게 라스포사에 드나드는데 남편이 쓰는 검찰총장 관용차를 탔다는 것이다.
▽서양에는 옛날 말을 탄 사람은 돋보였지만 요즘 관용차를 탄 사람은 낮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는 관용차에 대한 시민감시가 우리보다 훨씬 심해서 관용차 타는 게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별할 줄 알아야 고위 공직자나 그 가족으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얘기는 동서양 어디서나 진리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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