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30년代 대공황]미국發 한건의 법안

  • 입력 1999년 8월 18일 19시 25분


벤저민 스트롱. 그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였다. 적극적인 통화정책으로 유명했던 그가 1928년 8월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두달후 사망했다. 그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구심점을 잃었다. 1년뒤 뉴욕 주가가 폭락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스트롱총재의 생전 지침대로 은행파산을 막기 위해 돈을 풀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무슨 법에 근거해 마음대로 행동하느냐’고 경고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은 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만일 그때 스트롱이 살아서 적절한 통화금융정책을 폈다면 주가 폭락은 은행 파산으로, 기업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30년대 대공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농산물 가격하락을 걱정하던 허버트 후버 행정부와 공화당 의원들은 30년 미국의 관세를 인상하는 스무트―홀리관세법을 통과시켰다. 역사상 ‘최악의 법’으로 알려진 이 법을 전후해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등 전세계 나라들이 보복적인 관세인상을 단행했다. 보호무역주의 열풍은 세계시장을 더욱 위축시켜 불황을 악화시켰다. 대공황연구의 권위자 찰스 킨들버거 MIT교수는 “30년대 공황이 그처럼 장기간 세계적 규모로 일어난 것은 공교롭게도 당시 세계경제의 리더십이 공백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후버는 단지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선량한 의도’에서 관세를 인상했지만 그것이 세계경제를 돌이킬 수 없이 악화시키고 부메랑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지 몰랐다. 영국은 이미 세계경제의 지도력을 잃었고 미국은 1차세계대전과 20년대 번영을 거치면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몇가지 우발적인 사건과 정책 실수들이 빚은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29년 9월까지 사상 최고를 기록하던 주가가 10월24일 폭락에 이어 파상적 붕괴를 계속하자 수십명의 주식 브로커들이 뉴욕 맨해튼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유명한 국제투기꾼 아이버 크루거 등 투자자들도 권총과 가스로 목숨을 끊었다. 32년까지 약 6000개의 은행이 파산했고 매주 평균 6만4000명의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불황은 즉시 다른 나라로 파급되었다.

오스트리아 최대은행 크레디탄슈탈트가 파산하면서 많은 은행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1차대전후 고액의 배상금과 살인적인 인플레에서 간신히 벗어나려던 독일은 16∼30세 남자의 절반이 일자리를 잃었고, 호주는 32년 실업률이 30%로 급등했다.

부랑자숙소와 음식배급소에는 얼마전만 해도 어엿한 중산층이었던 중절모의 신사들이 넘쳐났다. 도시의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동안 수천에이커의 농토에서는 곡물이 (추수해봤자 수지가 안맞기 때문에) 들판에서 썩어갔다.

공황이 사회주의혁명의 기초가 되리라던 카를 마르크스의 말처럼 30년대 공황은 굶주린 노동자들의 폭동으로 비화될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실업자와 농민들은 연일 시위를 벌였고 부랑자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필연’으로 알려진 경기순환, 그리고 공황이 항상 30년대처럼 극단적인 것은 아니었고 주가 폭락이 늘 공황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1987년 10월 뉴욕 주가가 폭락했을 때(블랙 먼데이) 선진국들은 적극적 정책 협조를 천명한 ‘G7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97,98년에도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동유럽 러시아 브라질 등으로 이어지자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 정책개입과 원조 등으로 ‘진화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공황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폴 크루그만 MIT교수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 등은 현재 미국 주가에 거품이 있으며 이때문에 지금의 활황이 갑작스러운 파괴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기업의 다국적화, 자본과 금융의 국제화가 고도화된 지금 한 지역의 경제위기는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지구촌 전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미국이 그 진앙지가 된다면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위험이 촉발되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경제기초와 국제공조체제를 튼튼히 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뉴욕〓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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