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행복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 입력 1999년 7월 23일 18시 17분


▼「행복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필립 반 덴 보슈 지음, 김동윤 옮김 / 자작나무 309쪽 9500원 ▼

고교시절엔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군대에선 ‘하면 된다’, 회사에선 ‘목표 초과달성’이라는 구호에 쫓기며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인들. “무엇을 위해 기를 쓰고 달리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답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간단명료한 답을 갖고 있다. 나아가 그 답을 대하는 현대인의 태도가 얼마나 본질로부터 비켜나 있는가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행복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일들을 벌이고 또 노심초사하지만, 정작 행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데는 조금의 시간도 할애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저자는 현대인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도록 하고 있다.돈과 권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완벽한 섹스는? 아니면 아예 희노애락에 시달리지 않도록 마음을 텅 비우거나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등등….

이 답을 찾는 과정에 나침반이 돼 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부터 현대 프랑스의 사르트르에 이르는 철학자들. 저자는 행복론의 관점에서 소피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데카르트, 프로이트, 사르트르 등 서양철학사의 10가지 주요 흐름을 정리하고 각각의 핵심적 주장을 요약한다. 철학사 다이제스트이며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중들을 겨냥해 집필된 교양서인 셈.

이 책의 첫째 장점은 오래된 철학적 명제를 현대인이 생활하면서 겪는 문제와 결부시켜 철학이 녹슬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 것. 정치든 장사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본질보다는 ‘커뮤니케이션 혹은 광고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렸다는 생각이 현대자본주의에만 있는 것일까? 천만에. 이미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돈과 권력을 잡기 위해 거짓말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두번째 장점은 짧지만 자기 의견이 분명하고 정보가 되는 각주. 예컨대 욕망에 대한 정신분석학의 견해를 설명하면서 각주를 통해 “프로이트의 사상에 대해 알고 싶으면 먼저 ‘정신분석학에 관한 다섯강좌’를 읽고난 뒤 ‘정신분석입문’을 읽기 바란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요약에 머물지 않고 개성적인 반론을 덧붙인다. 부질없는 욕망을 이성으로 자제하도록 가르치는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해서는 ‘남에게 해는 안 끼치지만 인간을 고귀하거나 위대하게 만들지도 못하는 철학’이라고 평가한다.

역자는 건국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적 비유가 풍성한 원문의 맛을 살렸지만 간혹 주술이 맞지 않는 문장이 있어 옥의 티로 보인다.〈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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