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인터넷 탄생]비행기 티켓이 펼쳐준「정보의 바다」

  • 입력 1999년 7월 11일 22시 38분


“‘L’자 받았나요?” “예.” “‘O’자는요?”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시스템 다운….

세계 수억 인구가 동시에 무한한 정보를, 소리와 동영상까지 주고 받는 인터넷도 시작은 L과 O 단 두 글자였다.

1969년 9월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컴퓨터과학부 실험실. 레오나드 클라인로크교수 등 연구자들과 미 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ARPA), 컴퓨터회사 관계자 등 수십명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들은 스탠퍼드연구소의 컴퓨터에 ‘접속(Log in)’이란 메시지를 보내려다 ‘LO’ 두글자를 보내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전화로 글자를 받았는지 확인하면서. 사진 한장 남기지 않은 이 초라한 테스트야말로 ‘인터넷(아파넷)’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다른 많은 발명들처럼 인터넷 역시 과학자의 우연한 발견과 미 정부의 안보전략 같은 것이 뒤얽혀 전혀 뜻밖의 결과를 낳은 경우다.

1962년낮에는전기기술자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던 한 청년은 인터넷의 이론적 기반이 된 ‘패킷교환(packet switching)’에 관한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그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탄 날 논문의 주제를 잡았다. 통신라인을 비행기처럼 예약만 해두고 필요할 때 쓰는 방법이 없을까. 정보를 여러 작은 단위(패킷)로 나눠 이 패킷들이 각자 다른 경로를 떠돌다가 최종 목적지에서 만나도록 하면 가능할 것 아닌가. 클라인로크는 논문을 마치고 UCLA에서 평범한 교수가 되었다.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에 놀란 미 정부가 핵 공격에도 군사통신망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았다면 인터넷의 효시인 아파넷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네트워크처럼 한 지역이 파괴되면 여기에 물린 수천개의 접속이 무력화되는 중앙집중식은 곤란했다. 당시 미 정부는 미사일개발 등에 필요한 컴퓨터과학의 발전을 위해 학자들에게 컴퓨터를 많이 사줬다. 그런데 그때는 컴퓨터 값이 매우 비쌌다. 컴퓨터끼리 정보를 교환한다면 컴퓨터마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그즈음 링컨연구소에 있던 래리 로버트는 고등연구계획국에 새로운 통신망 연구를 제안했다. 로버트는 클라인로크의 친구였다. 두 사람이 68년 계획서를 낸 지 1년 만에 UC

LA와 스탠퍼드연구소 사이에 첫 통신이 이뤄졌고 그해말에는 샌타바버라의 캘리포니아대, 유타대 등 4곳이 연결됐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인터넷이 아니었다. 73년 어느날 빈튼 서프와 밥 칸이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인터넷 프로토콜 TCP/IP의 기본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아파넷은 단지 몇개 대학에 연결된 네트워크에 불과했을 것이다.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란 뜻의 인터넷이란 이름도 이들에게서 나왔다. 또한 89년 스위스의 입자물리연구소 연구원이던 팀 버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안하지 않았다면, 92년 미국의 슈퍼컴퓨팅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마크 앤드리슨이 단순 작업에 너무나 지겨운 나머지 남는 시간에 ‘모자익’이란 웹브라우저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인터넷은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팽창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들 중 누구도 지금과 같은 인터넷을 ‘의도’하지 않았고 지휘하는 본부도 없었다. 인터넷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민주적이고 시장경제적’으로 발전해왔다. 초기 사용자들이 각자 좀더 편리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띄우면 그 중 가장 쉽고 편리한 프로그램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하게 퍼져 ‘천하를 평정’했다. 그럴 때마다 인터넷 사용자는 수십(69년)에서 수백(79년), 수만(92년), 1억5천∼2억명(97년)으로 증가했다. 양적 확산은 자연히 엄청난 질적 비약을 낳았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수억 인구는 각자 자신의 집에 수백억원짜리 슈퍼컴퓨터를 들여놓은 셈이 됐다. 이제 인터넷은 2000년대 세계 경제를 움직일 가장 중요한 사업수단이 되었다. 변화의 속도도 빨라졌다. 빌 게이츠가 퍼스널컴퓨터로 세계적 명성과 부를 거머쥔 것은 창업후 20년만이지만 마크 앤드리슨은 넷스케이프사를 창업한 지 2년만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인터넷은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으며 그 파급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단계로 치닫고 있다. 세계 시민 누구나 인터넷을 이용해 억만장자가 될 수도, 살기 좋은 사이버스페이스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를 악용하는 개인이나 세력의 위험이 그만큼 높아진 것은 해결해야할 과제다.

〈로스앤젤레스〓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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