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변호사 박원순씨

  • 입력 1999년 7월 9일 19시 30분


위로 누이 넷과 형 하나를 둔 나는 행복했다. 누이와 형이 물려준 책들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골(경남 창녕)에 무슨 책 대본소나 동네 도서관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책들이 온 집안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책 제목조차 잊어버렸지만 누나들이 보았던 순정소설들은 어린 나이에 연애감정을 맛보게 했고, 과학사 책과 몇 권의 SF소설은 시골 소년의 상상력을 한없이 높여주었다.

이 시절 나는 왕복 이십리길을 걸어다녀야 했다. 만화책을 들고 논두렁길을 걷다가 도랑에 빠진 일도 있었다. 초중학교시절, 그리고 서울에 유학한 고등학교시절까지 언제나 나의 단골 특활활동 분야는 도서반이었다. 도서반원은 책을 마음대로 빌려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까지 나의 독서행태는 단연 난독이었다. ‘괴도 루팡’시리즈부터 서양의 고전문학까지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러니 체계적으로 정신의 양식이 되었는지 의심스럽다.

대학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시위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가면서 나의 독서편력은 또다른 전환을 맞았다. 이영희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 등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서적은 ‘감옥독서’의 기본이었다. 고등학교 입시지옥에서 미처 맛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었다. 감방에는 필수 휴대품이 돼 있는 ‘성경’을 통독하며 예수에게서 세상을 뿌리째 바꾸려 했던 혁명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환호했다.

감옥에서 나와서도 복학이 되지 않아 방랑의 세월을 보내던 나는 한동안 또다시 난독의 계절을 보냈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이나 메닝거의 ‘자살론’따위의 심리학 서적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 때 읽었던 독일 법철학자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고시공부를 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권리는 누가 공짜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싸워 쟁취하는 것’이라는 예링의 주장이 나약한 무기로밖에 보이지 않던 법률의 유용성을 깨우치게 한 것이다.

그 후 변호사가 돼 17∼18년이 지나면서 젊은 시절처럼 책향기를 맡을 기회는 대폭 줄었다. 최근에는 박노해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었다. 온몸을 던져 과거를 살았던 사람이 자기반성과 함께 미래의 비전만들기를 시도한 이 시들은 그냥 읽어넘기기 보다는 계속 반추해야 할 것들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변호사 사회운동가 엉터리 칼럼니스트로서 변론 성명 칼럼 등을 쓰면서 ‘마음의 저수지’를 열어 글을 뽑아 쓰기만 해왔다. 다시 내 ‘마음의 저수지’를 채울 충전의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박원순<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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