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태준총재의 「자기 비판」

  • 입력 1999년 7월 2일 19시 22분


잇따른 의혹사건으로 들끓던 민심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사과발언 이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책 몇 가지를 내놓는다고 해서 오늘의 위기가 끝나는 것도 아니고, 돌아선 민심이 금방 돌아올 일도 아니다. 행여 그렇게 낙관한다면 더 큰 위기를 부를 것이다. 진정 위기를 극복하고 등돌린 민심을 돌아오게 하려면 대통령을 비롯한 현집권세력 모두가 실천적 자기개혁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위기의 본질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는 겸허한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엊그제 국회에서 있었던 3당 대표 연설 중 특히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연설내용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박총재는 공동여당의 한 축을 이루는 정파의 수장으로서 그의 정권 비판은 야당의 그것과는 달리 권력의 ‘자기비판’이란 성격을 갖는다. 박총재는 당면한 위기의 본질에 대해 “사건 핵심을 외면하고 민심의 흐름을 가볍게 여긴 우리의 독선과 오만이다. 오만해지면 비판도 비난으로 들리고 독선에 빠지면 잘못도 소신으로 착각한다. 정권출범 당시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가 이 난에서 거듭 지적하고 지속적으로 촉구했던 내용인데 그것이 공동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총재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권력의 시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을 저지르며 법치와 민주를 왜곡하고 굴절시켰는가.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자책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특별검사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검찰이 특검제를 기피하고 있는 이유 그 자체가 특검제를 해야 하는 이유”라고 통박했다. 그는 ‘파업유도 의혹’은 잘못된 국가권력 작동임을 지적했고,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철저한 대북(對北) 상호주의를 강조했다. 그동안 실적주의에 연연해 북한의 술수에 휘둘려온듯한 대북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공동여당의 지도부로서는 ‘통렬한 내부비판’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박총재의 고언(苦言)이 정부 차원의 실천으로 이어지느냐의 여부이다. 이는 대통령의 사과 이후 막혔던 권력내부의 언로(言路)가 뚫리고 다양한 견해가 통합되어 국정에 반영되는지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동여당의 대표들은 청와대에 주례보고나 하고, 왜소화한 내각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계속돼서야 ‘민심정치’란 입에 발린 소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박총재의 ‘자기비판’ 이후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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