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서정선/치료용 인간배아 복제 논란

  • 입력 1999년 5월 20일 10시 43분


《20일부터 매주 한차례 ‘전문가 진단’을 게재합니다. 첨단과학 국제금융 환경 국방 등 분야의 이슈에 대해 해당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의 해설과 전망을 싣습니다.》

과학에는 두 가지 내부적 충동이 있다. 하나는 인간을 둘러싼 세상을 원리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본원적인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라는 종을 위해 세상을 보다 편리하고 통제 가능하게 변화시키려는 욕구이다.

생명 복제 연구에도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순수한 학문적 의미에서 볼 때 체세포 핵이식 방법으로 개체발생을 완벽하게 성공시킨 것은 생명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이 성공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의 발견에 비견되는 20세기 최대의 생물학적 성과이다. 새로운 가역적 분화개념에 의하면 노화는 더 이상 비가역적인 운명적 현상이 아니며 암 당뇨병 등 모든 성인병의 원인적 치료가 가능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복제기술은 개인별 줄기세포이식 치료법을 가능하게 해 21세기 개인별의학시대를 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 기술의 남용으로 복제인간의 양산과 이에 따른 인간의 유일성을 상실하게 돼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를 지켜보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복제기술의 기술적 측면에만 너무나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 기술의 순수 학문적 가능성이 너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든 간에 인간 개체 복제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서 먼저 자궁 이식을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체외 난자 연구도 허용될 수 없다는 전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래 치료용 인간 배아 복제 연구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인간의 배 발생과정을 살펴보면 정자와 난자가 하나의 수정란으로 합쳐지고 유사분열로 둥근 세포덩어리를 형성한다. 세포가 분열을 계속하면서 수정란은 속이 빈 둥근 포배가 된다. 일반적인 동물의 발생과정에서 포배기의 세포는 분열하고 움직이고 죽기를 계속하면서 다음 단계인 낭배를 형성한다.

수정후 2주가 되면 비로소 배아(embryo)가 되고 배아시기 동안 모든 장기가 형성된다. 수정후 8주가 되면 태아(fetus)가 되는데 이 시기에는 단순히 장기가 양적인 단순성장을 하게 된다. 따라서 수정 후 2주가 중요한 시기가 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언제부터 세포의 덩어리가 하나의 개체성을 획득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체성은 원시선의 출현여부로 판정될 수 있다(일란성 쌍생아는 두개의 원시선이 반대방향에서 출현한다). 따라서 세포의 덩어리에서 개체성을 획득하는 경계가 원시선이 출현하는 수정 후 14일이다. 14일까지의 초기 배아 단계는 단순한 세포의 덩어리 상태로 판단돼야 한다.

수정란 또는 세포 하나도 생명이라는 종교계의 논리도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개체성 확보 이전의 세포차원의 생명은 체외에서 연구가 허용될 수 있어야 한다. 성급한 법적 규제나 사회적 몰이해 속에서 미래 생명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인간 배아 복제 연구가 금지된다면 21세기 미래첨단 기술사회에 진입하는데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서정선(서울대교수·유전자이식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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