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세기를 뒤흔든 지적 스캔들」 4권 나와

  • 입력 1999년 4월 2일 19시 13분


파경에 이른 배우자나 연인이 당신의 일대기를 쓴다고 하자.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묘사될까? 미련과 증오에 사로잡힌 상대가 험담만 잔뜩 늘어놓아 당신의 모습을 왜곡시키지나 않을까?

그러나 깊은 애증을 나누었던 배우자나 연인이야말로 당신을 꿰뚫어 보고 있다. 당신을 움직이는 두 개의 원동력, 즉 욕망과 콤플렉스를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독일 로볼트출판사의 시리즈 ‘짝’을 일부 번역한 ‘남과 여―세기를 뒤흔든 지적 스캔들’(한길사)4권은 불꽃튀듯 사랑하고 파경을 맞은 4쌍의 남녀 이야기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음악가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 바그너(‘광기와 사랑’편), 마릴린 먼로와 작가 아서 밀러(‘섹스와 지성’편),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과 러시아의 시인 세르게이 에세닌(‘당신은 내 마음의 텍스트’편), 프랑스혁명기 살롱정치를 통해 남성 못잖은 권력을 휘두른 제르멘 네케르와 정치가 뱅자맹 콩스탕(‘기묘한 관계’편).

스캔들이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들을 가십모음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 시리즈는 방법을 달리한 평전(評傳). 각자 당대의 스타였던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파경을 맞는 과정을 추적, 자서전이나 전기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들 내면의 욕망과 콤플렉스를 밝혀낸다.

‘미국의 지성과 할리우드 최고 상품의 결합’으로 묘사됐던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부부. 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을 정면 돌파한 좌파극작가와 ‘백치미’가 트레이드마크였던 섹스심벌은 각각 서로에게서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

바그너와 코지마 바그너 부부, 그리고 철학자 니체의 기묘한 애정. 이들 부부를 동시에 좋아했던 촉망받는 청년철학자 니체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바그너부부가 주창하는 ‘반유태주의’의 전사로 나섰다. 그러나 니체는 나중에 자신이 바그너부부의 총알받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쓰라리게 깨닫고 그 증오심을 원천으로 현대철학의 모태가 된 유명한 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

서로에게 끌려 사랑하지만 너무 닮은 천재들은 해로의 기쁨을 나누지 못한다. 격정적인 시낭송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청년시인 에세닌은 열다섯살 연상의 덩컨과 결혼한 뒤 광포한 알코올중독자가 됐다. 네케르는 콩스탕과 욕설을 퍼붓다가 화해하고 다시 서로를 저주하는 엇갈린 사랑을 평생을 두고 반복했다.

96년부터 ‘짝’시리즈를 발간해온 로볼트는 ‘로로로평전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지난 40년간 6백명의 평전을 펴낸 독일의 대표적 출판사. 2000년까지 44쌍의 ‘스캔들’을 펴낼 계획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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