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무원들은 좋다지만

  • 입력 1999년 3월 26일 18시 53분


공무원들의 과거 소액비리에 관용을 베풀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의 말에 따라 관계부처가 구체적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공무원들이 지난날 저지른 사소한 관행적 비리때문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 이를 해소하고 일하는 분위기로 바꿔보자는 데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그동안 공직부패를 척결한다는 명분하에 공직사회를 지나치게 흔들어 놓은 측면도 없지않다는 점에서 공직사회가 환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관용의 대상이 될 ‘소액’기준을 어느 범위에서 잡느냐가 우선 문제다. 대통령은 ‘국민의 법감정이 허용하는 선’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는 막연한 개념이다.

공직사회에서는 몇만원 내지 몇십만원 정도는 ‘관행’으로 보아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풍토가 있는 반면 일반국민 사이에서는 그 정도라도 안된다는 엄격한 법감정을 나타낼 수 있다. 공직사회 내에서도 이른바 이권(利權)부서 소속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기준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일률적인 선을 긋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이 소액의 기준이 앞으로 사정기관에서 공무원수뢰사건처리의 잣대로 원용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소액’을 얼마로 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관용을 베푸는 기준시점을 언제로 정하느냐도 관심거리다. 이에 관해서는 지난해 현정부 출범과 동시에, 늦어도 제2건국운동을 선언한 작년 8월15일을 기준시점으로 했으면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정부 출범후 이미 1만명 이상의 공무원이 각종 비위사실로 형사처벌 또는 징계를 받은 지금에 와서 사면을 검토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민간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소액비리에 대한 사면검토의 진짜 이유중 하나는 현실적으로 사정능력의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한편으로는 내년 총선과 내각제문제 해결을 위한 공무원쓰다듬기 전략이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여하튼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비리’를 사면해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어디서 찾느냐는 것이다. 공무원사회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과 ‘법의 지배’라는 법치국가의 대원칙을 지켜야하는 당위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청와대측은 관계부처가 구체적 방안을 지혜롭게 강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발언의 성격을 문제제기 정도로 볼 수도 있겠으나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발표한 인상도 있다. 혹시 정부의 사정의지가 퇴색하거나 공무원들의 복무기강이 흐트러지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 무엇보다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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