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는 세상]반신불구 시인 이충기씨의 인생예찬

  • 입력 1999년 3월 7일 19시 55분


《‘내가 탄 휠체어는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곧장 앞으로 나아간다

햇살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유난히 빛나고

하마터면 내 처지를 잊고서

그들 속에 섞여

함께 걸어가고 싶었던

화창한 어느 봄날’》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16년동안 누워 살아온 이충기씨(46). 그가 병상에서 써온 시들이 최근 한권의 시집으로 출간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좋은날미디어)라는 제목으로.

이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부산 부곡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83년 3월초. ‘호랑이선생’이라는 별명답게 호탕한 성격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을 하고 귀가하다 지하철공사장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인생도 무너져 내렸다.

이후 그는 ‘막대기’처럼 누워서만 지냈다. 산다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해갈 뿐이었다. 오늘까지만, 아니 내일까지만…, 하면서 목숨을 끊어버리려 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제자들이 보내오는 편지와 책을 읽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한권의 시집 ‘산골소녀 옥진이’를 보내왔다.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산골소녀의 시를 읽고 그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엄지와 검지뿐. 두 손을 기도하듯 끌어모아 한자한자 써내려간 글은 그가 세상에 남기는 유서(遺書)와도 같았다.

그의 글은 94년 월간 ‘샘터’가 주최한 ‘오늘의 인간승리상’ 수기에도 당선됐다. 글쓰기는 어느덧 그에게 ‘생존의 이유’가 됐다.

그렇게 써내려간 시가 어느덧 3백여편. 그는 더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절망이 숨을 막히게 하여도/나는 이겨낼 수 있네/절망이 아무리 강해도/희망의 싹은 자라니까’라고 쓴다.

지난 십수년간 그는 주변의 도움만으로 살아왔다. 병상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홀로 남겨진 그에게 몇년전 박안젤라(46)라는 천사같은 여인이 나타나 그를 보살피고 있다.

또 자기도 모르게 부산교대 동문들이 뜻을 모아 출판사를 물색해 그의 시들을 책으로 내놓았다.

그는 이제 말한다. “그동안 주변의 ‘베풂’만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들에게 저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나눔’의 시를 쓰고 싶습니다.”

〈사천〓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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