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裵장관 경질이 남긴 것

  • 입력 1998년 12월 20일 19시 59분


각료의 임면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사항이다. 그러나 그것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않을 때 뒷말은 남게 마련이다. 국방 및 군기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데도 국방장관이 유임됐을 때나 빅딜관련 발언 파문으로 배순훈(裵洵勳)정보통신부 장관이 전격경질됐을 때에 그럴 가능성은 높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장관의 거취문제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배장관 문책경질은 정부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적 발언이 직접적 동기였다고 전해진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우전자가 삼성자동차와 빅딜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탓일 수도 있다. 옛날 직장에 대한 애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국무위원으로서 신중을 기하지 못한 느낌이 있다. 또 본인 주장대로 빅딜에 문제가 있다면 국무회의 등 논의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토록 했어야 옳다. 물론 한계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공개석상에서 불만을 표출한 것은 성숙한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발언파문이 장관경질로 까지 이어지는 세태도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를 처음 임명했을 때 정부 여당의 논평은 한결같이 기업의 자유롭고 다양한 경영분위기가 관료사회에 이식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말 때문에 그는 문책됐다. 권위주의적 사고와 부처 이기주의가 판치는 관료사회에서 민간기업인 출신에 걸었던 정부체질 개선의 기대는 무산됐다. 정권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는 데 한계를 보인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가 무능했다느니 소극적 성격의 소유자였다느니 하는 비난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단죄하는 표현치고는 옹졸하다는 인상을 준다.

배장관이 지적했던 ‘잘못된 빅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문제다. 경제개혁은 우리에게 지상의 과제다. 그러나 기업개혁이 꼭 빅딜의 형식이어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고위공직자들은 생각보다 많다. 제대로 된 빅딜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정치논리로 주도된다면 문제가 없지 않다.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간의 빅딜 후유증이 이를 증명한다. 관변 연구소에서까지 반대하는 반도체빅딜을 포함해 산업현장의 주장이나 외국투자가의 분석과 상치되는 방향의 빅딜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기업인으로서 유능했던 배씨가 장관취임 10개월만에 자리를 물러나야 하는 것이 우리 공직사회의 현주소다. 이번 파문으로 국무위원들의 소신 표출이 억제될까 걱정이다. “기업인 시절에는 최고결정권자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신속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장관이 된 후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퇴임장관의 고백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국방장관의 유임과 배장관의 경질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의 의미를 여러모로 생각케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