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지구촌 리포트]잉글랜드 BT연구소

  • 입력 1998년 12월 2일 19시 27분


“교재없이 컴퓨터로 강의를 듣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끼리 가상공간에서 만난다.”

6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대학. 이곳 컴퓨터 공학부에서 만난 말콤 앳킨슨교수와 그의 조교 미첼 몽고메리 매스터즈 박사는 “설명할 필요없이 보여주겠다”고 첫마디.

이들이 수년전부터 매달리고 있는 연구과제 이름은 ‘새로운 사실(Revelation)’. 강의실 복도를 끼고 돌아 도착한 연구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3차원 카메라와 손가락을 끼워서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촉각장치.

“무엇처럼 느껴집니까.”

“3차원 그래프 같은데요.”

“최근 파운드화의 환율변동을 그래프로 입력해 놓은 것입니다.”

촉각장치에 검지를 넣고 눈을 감은 뒤 매스터즈박사가 계속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는 무엇일까.

▼만질 수 있는 입체▼

정보알파벳 문자들, 편마암 표본, 사람의 두개골, 말의 난소…. 점점 답변하기 어려운 것들이 컴퓨터를 통해 손끝으로 전달됐다.

“실물을 구하기 힘들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 입력시켜 놓고 여러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이 연구의 취지. 컴퓨터 모니터로 대상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손가락을 통해서 질감까지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돼있다.

글래스고우대학 연구실 컴퓨터에 입력된 정보는 고속 네트워크를 통해 시내 반대편에 있는 스트라스클라이드대학의 학생들도 이용하고 있다. 3차원카메라로 찍으면 2, 3분안에 컴퓨터에 입력되어 만져볼 수 있는 입체정보로 영구보존된다.

잉글랜드 마틀샴의 BT연구소. ‘비전 돔(Vision Dome)’이라는 21세기형 가상현실(VR)센터에 들렀다. 이곳은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기 위한 VR극장과는 좀 다르다. 오히려 첨단 비즈니스 센터 혹은 교육센터라고 불러야 할 곳이다.

비전돔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허공에 떠오른 VR디스플레이는 둥그런 돔 형태. 비전돔에서는 센서가 부착된 옷을 입거나 헤드 마운트를 쓸 필요가 없다. 그냥 편한 자세로 걸어들어가 자리를 잡고 서 있으면 불이 꺼지고 이 반구(半球)형 디스플레이에서 쉴 새 없이 3차원 입체영상들을 쏟아낸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나를 꿈꾼 것인지 모르겠다”던 장자의 말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더 놀라운 것은 이처럼 현실을 쏙 빼닮은 가상공간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을 초청할 수 있다는 점. 중동의 석유재벌이 뉴욕의 건축가에게 부탁해 하와이에 별장을 지을 때 한 사람은 바그다드에 또 한 사람은 맨하탄에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은 비전돔에서 만나 와이키키 해변에 지어질 호화스러운 별장의 내부로 함께 걸어들어가 인테리어에 대해 의논할 것이다.

비전돔에 주라기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면 공룡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북경과 시카코의 암센터 연구원들이 한 데 모여 국제회의를 여는 일도 가능하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초소형 마이크로 로봇을 타고 인체라는 거대한 우주를 찾아 들어간 탐험대원처럼 가상의 세계로 깊숙히 빨려 들어가 새로운 항암제가 과연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을 것인지 흥미있게 지켜볼 수 있다.

공상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의 비전돔이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조만간 실현될 수 있다.

‘스마트퀼(Smart Quill)’은 BT랩이 개발중인 21세기형 개인정보단말기(PDA). 생긴 모양은 영락없는 만연필이다. 키보드는 필요 없다. 정보를 입력하고 싶다면 만연필처럼 손에 쥐고 종이위에 글씨를 쓰기만 하면 된다. 스마트퀼에 달려 있는 센서가 손의 움직임을 읽어들여 그 내용을 메모리에 저장한다. 종이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벽에 걸린 칠판이나 냉장고에 붙여놓은 메모지, 심지어 허공에 가상칠판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울퉁불퉁한 곳만 아니면 OK.

이 첨단 만연필을 살짝 기울여 주면 허공에 3차원 디스플레이가 나타난다. 화면에는 계산기, 캘린더, 자명종, 시스템다이어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띄울 수 있다. 물론 전자우편이나 삐삐의 문자메시지도 검색한다.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손 끝으로 불러올 수 있는 셈이다.

▼미래인간 ‘와이어드맨’▼

PC나 프린터, 핸드폰과 연결하고 싶다면 스마트퀼을 ‘잉크병’에 꽂기만 하면 된다. 작고 앙증맞은 모양의 잉크병은 스마트퀼과 다양한 정보가전기기를 연결시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똑똑한 만연필은 주인의 손에서만 PDA로 변신한다. 패스워드 대신 사인이 있어야 작동한다.

이 만연필을 사용하면 컴퓨터를 초소형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BT연구소의 연구원은 “문자판이 작아지는 만큼 사람의 손가락 굵기가 가늘어질 수는 없기 때문에 기존의 노트북이나 팜톱 형태로는 초소형 PDA를 만들 수 없다”고 설명.

또 한가지 BT연구소의 화젯거리는 일종의 사이보그인 ‘와이어드맨’. 현재 50여만명의 인류가 인공장기를 달고 있다는 데 착안했다. 휴대전화 단말기 전자수첩 삐삐 등을 앞으로는 초소형 전자장치로 만들어 몸속에 지니고 다닌다는 개념.

BT랩 관계자는 “21세기초엔 전자적으로 고통을 줄여주는 장치나 건강상태를 자동으로 입 출력해주는 반지가 널리 보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래스고우·마틀샴〓정영태기자〉ytc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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