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이윤기 첫 산문집 「무지개와 프리즘」

  • 입력 1998년 11월 16일 19시 32분


남성적인 힘과 근육이 꿈틀대는 작가, 이윤기씨(51). 형식 실험에 치우치는 신세대 작가들을 ‘데생 연습을 끝내지 못한 추상 화가 같다’고 몰아치며 서사의 힘을 복원해온 소설가.

그의 첫 산문집 ‘무지개와 프리즘’(생각의 나무)은 한 도저한 인문주의자의 거대한 성채(城砦)를 연상시킨다.

그의 글은 안 쓰고는 못 배기는 소설쓰기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저술행위, 옛사람의 발자취를 오늘에 더듬는 고전번역 과정에서 우러나오는 지적 성찰과 치열한 각성으로 번득인다.

제1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만나는 인물들. 육조 혜능, 니코스 카잔차키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생텍쥐페리, 사마천, 베토벤 등등…. 이들에 대한 탐구는 인간과 문화,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훑고자 하는 작가의 또 다른 ‘야간비행’이다. 그들의 행적과 저술은 그대로 작가 자신의 삶의 궤적을 꿰뚫는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소로의 한 마디.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만 만나보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살면서 내 스스로 삶의 참 모습을 찾아내고 싶었다….’

작가는 가장 빠른 여행자는 자기 발로 가는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한다.‘청년들에게 고함’에서 이렇게 외친다. ‘조직의 길은 독창적이지 못한 인간에게 양보하라. 거대한 조직은 그대들에게 약속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넓은 세상을 기다리며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라. 날마다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삶의 골수다….’

그는 운전중에는 절대, 베토벤을 틀지 않는다고 한다. 베토벤을 듣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일’이며 그것은 또한 지독한 고통과 불행 속에서 탄생한 베토벤 음악에 대한 예의라는 것.

그가 사마천이나 베토벤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무통(無痛) 분만’의 우리 시대에 ‘모기가 무쇠솥을 뚫기는 장히 어려운 일이나, 한번 머리를 들이밀어 보면 뚫을 수도 있다’는 서산대사의 말을 들려준다.베토벤이 행복하였다면 우리가 지금 그의 음악이 주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는 문학이 인문학 제 분야에 사유의 원자재를 공급하던 행복한 시대를 꿈꾼다. 21세기에 과연 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이며, 문학이 맡아야 할 문화적 몫이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닥 걱정하지 않는다. 문학이 다양한 매체들에게 안방자리를 내주고 드난살이로 전락했다는 지적에,이렇게 반문한다.

“프리즘이 생겨도 무지개는 여전히 아름답지 않은가….”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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