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관리허술한 방사성물질

  • 입력 1998년 11월 10일 19시 05분


골프공에 방사선을 쪼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캐나다 원자력공사는 실제로 2백여종의 물건을 원자로 속에 넣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방사선에 노출됐던 골프공은 놀랍게도 비거리가 20%쯤 늘었다. 웬만한 아마추어 골퍼가 프로만큼 날릴 수 있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아직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물론 미국 골프협회는 이 공을 공식대회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1898년 퀴리부인이 처음으로 방사능원소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 후 과학자들은 약 40종의 방사성 물질을 발견했다. 여기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해 X선 촬영을 하거나 암을 치료하고 핵 분열이나 융합 때 나오는 열로 원자력에너지를 만들어 평화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핵폭탄도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방사선을 쪼이면 고기가 상하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운송중인 식용 감자에서 싹이 나오지 않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방사선은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방사선은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을 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 87년 여름 브라질의 한 지방보건소에 도둑이 들어 세슘이라는 방사성물질이 들어 있는 치료기를 훔쳐 고물상에 판 사건이 대표적 예. 어둠속에서 파란빛이 나오는 신기한 모습을 구경한 주민 2백60명이 방사능에 피폭됐고 이 중 30명이 사망했다. 국제적으로 방사성물질 관리에 경종을 울려준 사건이었다.

▼이번 원자력병원에서 도난당한 방사능물질중에는 바로 이 세슘도 포함되어 있다. 방사선을 쪼이면 생식기능이 떨어지고 암에 걸리거나 심할 경우 즉사하기까지 한다. 비록 일부는 회수됐지만 이렇게 위험한 물질이 무방비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니 아찔하다. 90년 이후 같은 유형의 사건이 국내에서 5차례나 발생했지만 관리당국과 사용자의 무신경은 고쳐지지 않았다. 놀라운 일이 계속되는 세상이다.

〈이규민 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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