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상류층의 호화분묘

  • 입력 1998년 9월 15일 19시 46분


이번 추석에도 수많은 사람이 귀향길에 오를 것이다. 고향을 찾는 것은 핏줄끼리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省墓)를 하기 위해서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산소를 돌보는 일은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러나 성묘길에서 보게 되는 호화분묘들은 거부감을 준다. 가진 자는 죽어서까지도 호화판이니 빈부차는 참으로 끈질기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호화분묘는 오래 전부터 사회의 지탄을 받아왔으나 여전하다. 오히려 최근 일부 정치인과 부유층 사이에서 조상 묘를 호화판으로 꾸미거나 멀쩡한 묘를 이전하거나 보수해 호화분묘로 꾸미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조상 묘를 잘 써야 복을 받고 출세를 하게 된다는 음택풍수의 발복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한심한 일이다.

▼보건복지부는 현행법상 규정된 묘역면적기준(24평)을 초과하거나 설치기준(비석 상석 각1개, 석물 1쌍)을 위반한 묘는 모두 호화분묘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말썽이 된 국민회의 정희경의원의 남편 묘도 이 기준으로 보면 호화분묘임이 분명하다. 정의원측은 묘를 조성하면서 산림보존지역의 산림 1천여평을 훼손하고 주변 야산 비탈길을 깎아 포장도로까지 냈다 한다. 법은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의 묘지면적은 전국토의 1%를 차지하는 데다 매년 여의도 크기의 국토가 묘지로 잠식돼 가고 있다. 이대로 두면 전국토가 묘지로 뒤덮일 것이다. 복지부가 개인묘지를 24평에서 9평 이하로, 공동묘지의 개인묘는 9평에서 3평 이내로 축소하는 등 획기적인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도 이런 심각성 때문이다. 호화분묘는 사라져야 하고 묘지문화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 화장(火葬)을 택한 고 최종현선경그룹회장처럼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김차웅〈논설위원〉cha46@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