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떠도는 北문화재

  • 입력 1998년 9월 2일 18시 53분


북한 문화재의 대량 밀반입 사건은 소문만 무성하던 북한 고미술품의 밀반입과 유통 실태가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서울 인사동을 중심으로 최근 거래되는 고미술 명품의 상당수가 밀반입품이라는 얘기는 2,3년 전부터 골동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번 검찰수사로 밝혀진 실태는 1백억원대 1백50여점에 불과, 소문과 비교할 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북한 문화재들이 도굴 반출돼 국내외에서 떠돌고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고학의 금과옥조 중 하나는 유물은 원래 있던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미술품의 가치는 그 스스로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도 있지만 역사성에도 크게 좌우된다. 문화재는 출토지를 비롯한 유래, 쉽게 말해 ‘족보’를 알아야 역사성을 인정받고 가치도 높이 평가받는다. 밀반입된 북한 문화재들은 대부분 도굴된 것이거나 출처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진위가 불확실해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도굴은 문화재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훼손할 뿐만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도록 해 역사성을 말살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이번에 구속된 고미술상들이 주로 다뤘던 품목이 청자 등 도자기류인 것을 보면 밀반입품들의 대부분은 고려왕조의 수도였던 개성 부근에서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 개성은 북한이 직할시로 지정할 만큼 평양에 이은 대도시다. 이런 대도시 인근에서 도굴이 자행돼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들이 중국에서 시장이 형성될만큼 대량으로 흘러나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관계 당국 일부에서 묵인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국내 고미술 수집가들의 행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도굴꾼―골동상―수집가로 이어지는 북한 문화재 유출 악순환의 한 고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골동상과 수집가들은 북한 밖으로 밀반출된 문화재가 일본이나 홍콩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 밀반입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나 어불성설이다. 무슨 명분으로든 도굴을 부추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반입된 유물마저 일본으로 빼돌리는 상혼이고 보면 귀기울일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다.

문제는 북한 문화재들이 더 이상 해외를 떠돌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는 일이다. 가장 좋기로는 북한 스스로가 대책을 세워 밀반출을 막는 것이다. 남북한 당국간 직접대화가 어려운 만큼 중국도 가입돼 있는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밀반출 방지 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번 수사에서 드러난 북한의 밀반출 루트를 북측에 통보해 와해시키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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