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미룰 수 없다③]「돈 정치」

  • 입력 1998년 8월 28일 19시 36분


여당중진 A의원. 계보는 거느리지 않지만 경력이나 현직책상 지출규모가 상위서열에 해당한다.

고정비인 경상비는 대부분 지구당 차지다. 매월 상근자 4명의 월급 3백만원, 사무실유지비 2백만원이 나간다. 핵심당원 1백명에게는 분기별로 조직활동비 20만∼30만원씩 지급된다. 명절 때는 지구당 당원 2천여명에게 5천원 가량의 선물을 보낸다.

또한 1년에 한번꼴로 개최하는 순회의정보고회를 위해 의정보고서 5만부를 제작하는데 3천여만원이 든다. 마을 곳곳을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1회에 20만∼30만원의 다과비용이 소요되는 보고회를 1백여회는 해야 된다. 지난해 관련법 개정으로 5분의1 가량으로 줄어든 경조사비는 앨범 조향세트 등으로 대체했지만 월 2백만원이 넘는다.

기본적인 지구당운영비가 연간 2억∼3억원이다.

그나마 이는 중앙정치비용과 A의원이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나며 쓰는 돈은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개인적으로 쓰는 접대비 식사비 명절인사비용 등이 월 2천만∼3천만원은 될 것이라는 어림계산이다. A의원은 “큰 명절 때는 선물 등 인사비용만 억대가 드는 때도 있다”고 실토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중진’이라고 불리는 정치인은 대부분 이처럼 연간 5억∼6억원의 기본비용을 쓴다고 보면 큰 무리는 아니다.

계보를 거느리거나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중진들은 ‘돈’으로 계보의원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쓴다.

정치권에서는 ‘극빈자’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김재천(金在千·경남 진주갑)의원도 7월 한달 경상비로 8백58만원을 썼다.

이는 △의원 개인비용 2백20만원(식대 50만원, 차량유지비 40만원, 활동비 1백만원, 도서구입비 30만원) △지구당 운영비용 5백63만원(당사월세 2백만원, 직원급료 2백만원, 경조사물품비용 55만원, 전기료 등 잡비 83만원, 인쇄물 25만원) △의원회관유지비용 75만원이다.

더 큰 문제는 선거다.

선거법이 엄격하게 개정돼 ‘돈선거’가 불가능해졌다고 했지만 지난 ‘7·21’ 재보선은 이같은 주장을 무색하게 한 선거였다.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당선된 의원의 참모였던 B씨의 고백.

“모든 후보가 불법인 사랑방좌담회를 활용했다. 유권자들의 요구가 있고 맨투맨접촉이 득표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모인 10∼15명의 유권자가 후보나 참모들에게 밥을 사라, 술을 사라고 요구한다. 순수한 다과비용은 20만∼30만원밖에 들지 않지만 선거 막판에는 이런 자리가 돈을 뿌리는 자리로 변한 적도 적지 않다. 이런 좌담회가 수백회는 됐을 것이다. 전체 비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나 1인당 5만원은 줘야 표가 된다.”

유권자들의 변하지 않는 의식과 후보들의 매표심리가 담합한 ‘돈선거’가 여전함을 입증한 셈이다.

다수의 정치인은 통상적인 정치비용은 후원회를 통해 상당부분 충당한다. 1년에 3억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원금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현상을 빚는다.

중진들은 3억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반면 신인들은 후원금 상한액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중진이나 신인이나 이래저래 후원금 외의 ‘뒷돈’이 필요한 것이다.

‘목돈’인 선거자금은 별도다. 여기에 ‘정경유착’의 개연성이 항상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은 이같은 ‘돈정치’는 무엇보다 현재의 지구당과 정당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회의 장영달(張永達)의원은 “정치인 대부분은 지구당운영에 드는 비용이 전체의 60∼70%에 이른다. 지구당을 없애거나 운영방식을 바꾼다면 정치비용이 상당액 감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권자의 의식개혁과 함께 계파정치 패거리정치 등 정치행태가 청산돼야 한다.

선거와 관련해서는 현행 통합선거법이 선거자금규제에 관한 한 수준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법규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편법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과 처벌이 미흡하기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임좌순(任左淳)중앙선관위선거관리실장은 “불법선거자금사용을 근절하는 첩경은 선거이후에도 끝까지 추적, 예외없이 엄벌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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