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실대출 관행에 쐐기

  • 입력 1998년 7월 24일 19시 20분


법원이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이철수행장 등 4명의 전직 임원들에게 부실경영과 관련, 4백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다. 비록 1심이지만 법원의 이번 판단은 향후 우리나라 금융계의 대출관행과 재계의 경영풍토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은행이 대출할 때 회수능력을 고려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대단히 상식적이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판단착오나 거절하기 힘든 청탁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른바 관치금융시대의 은행이 사업성을 기준으로 대출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해 대출금을 떼이는 경우도 많았다. 법원의 결정은 관치와 청탁으로부터 은행종사자들을 막아주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은행의 대출관행이 바뀌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판결은 경영진에게 퇴임 이후까지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재임때의 책임경영을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대개 자리를 물러나는 것으로 문책이 끝나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살아 남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이젠 단순한 경영판단 착오에 의한 것이 아니면 은퇴 후에도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다. 공기업은 물론 상장사인 금융계와 재계의 경영진이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해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첫 판결이라는 데서도 의미가 있다. 주주대표 소송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지만 소액주주들의 결집력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 판결은 시민단체가 앞장 서 주주의 권익을 확보한 선례로 기록될 것이다. 상장사 경영진이 과거 소액주주를 깔보고 회사를 전횡적으로 경영해 온 풍토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은행 종사자들이 몸을 사려 대출업무가 경직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사업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창업기업 등 건실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아서는 안된다. 소액주주들의 과도한 권리주장도 자제되어야 한다. 주주들로부터 경영을 위촉받은 임원진이 소신껏 사업계획을 세우고 실천토록 격려하는 것도 경영 효율성을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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