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영섭/IMF비판은 「터부」인가

  • 입력 1998년 7월 8일 19시 36분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로 들어가게 된 작년말 이후 우리 지식인들의 IMF 정책에 대한 비판은 매우 소극적이다.

정치권에서 제기된 ‘IMF와의 재협상론’이 강한 반론에 부닥쳐 곧 후퇴한 이후 ‘IMF의 처방은 입에 쓴 양약’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확산돼 있다.

IMF의 정책은 우리에게 민감한 문제이므로 이를 비판할 때는 국가 이익을 고려해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중과 무비판은 다르다. 역설적으로 국가 이익에 관련된 중대사일수록 더 많은 비판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IMF의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여지는 현실적으로 크게 제약돼 있다.

▼ 충격요법 맹신 말아야

형편이 어려울 때는 돈 빌려줄 사람의 인격이나 융자 조건을 따지기 보다는 불리한 급전(急錢)이라도 얻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IMF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바로 이런 ‘급전 논리’에 비춰 사려깊지 못한 비판은 삼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는 금융 무역 투자 노동에 있어 IMF가 요구하는 투명성 합리성 개방성 유연성의 확립이라는 총론적 원칙들을 존중해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불행은 이런 원칙들을 경시해온 데서 비롯됐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의 정책이 각론 차원에서 모두 정답일 수는 없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요 경제 문제들에 대해 다른 처방을 제시해왔다는 것은 소박한 역사 상식이다.

옥스퍼드대가 출간한 권위 있는 ‘국제 정치학 사전’은 비판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IMF와 비교할 만한 국제기구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IMF가 개발도상국 채무국들이 이행하도록 부과하는 금융 조건과 구조조정 요구들은 채무국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채무국의 개혁정책을 유도하는 수단이 잘못되었음에도 이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고, 점진적이기 보다는 단기적 충격 요법이며, 채무국의 경제운영 지표들을 도출하는 분석의 토대가 취약하고, 구조조정 등에 따른 사회불안을 경시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와 파이낸셜 타임스지 등 권위지들의 분석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저명한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미 MIT대)의 비판은 특히 날카롭다.

IMF의 멕시코 지원은 멕시코 경제를 호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국제금융시장 자체의 붕괴를 막아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의 대자본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IMF의 지원외에 미국이 멕시코를 특별 추가 지원한 것도 멕시코에 투자된 미국 자본이 위험에 빠졌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위기는 수하르토 전대통령의 실정(失政)에 물론 큰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IMF가 한국에 적용한 것과 같은 고금리 및 긴축 재정과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물가 결정 정책 등이 인도네시아 유혈 폭동의 원인이 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새뮤얼슨도 IMF는 아시아 금융 위기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외국 은행들은 보호하면서 채무국들에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최근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적 특수성이라는 측면에서 IMF의 정책에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은 해묵은 것이다. IMF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상황에 보다 정통해야 한다.

이것은 아시아 국가들 뿐만 아니라 미국 등 IMF를 주도하는 핵심 회원국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최근 미국의 실업률 증가는 아시아 경제 침체에 그 주요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 건전한 비판은 꼭 필요

IMF의 정책에 대한 지식인들의 분별있는 비판은 IMF가 우리의 경제 문제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게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정부가 IMF에 대해 수동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해서 지식인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지식인들이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 정부의 협상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IMF의 장기적 이익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IMF에 대한 비판이 미국 등 IMF의 핵심 출자국들에서 훨씬 더 활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안영섭(명지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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