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차 작다고 무시…설움 많아요』

  •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우이∼씨, 왜들 난리야!”

5년간 중형차 콩코드를 타다가 한 달 전 경차 마티즈로 바꾼 I화학 김과장(38). 출근길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에 땀이 밴다. 그렇게 느린 것도 아닌데 뒷차들은 상향등을 번쩍이고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기분나쁘게 추월당하기도 여러 차례. 시커먼 중형차를 탈 때의 여유로움은 이제 없다. 깎인 월급에 아파트 중도금 부으랴, 기름값마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뛰고 있어 할 수 없이 ‘애마(愛馬)’를 처분했던 것. “작은 차의 설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하지만 자꾸 신경쓰이네요.”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큰 차 사야지’, 그는 오늘도 이를 간다.

▼자동차〓인격?▼

남자들의 차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아내 기분이 언제 ‘꿀꿀’한지는 몰라도 엔진오일은 제때 간다. 그들에게 자동차는 ‘분신’이다. “저 정신나간 그랜저 봐, 크니까 뵈는 게 없나보지?” “티코는 좋겠네, 비 사이로 막 가고.”

‘비싼 차(싼 차)〓권위 있는(없는)사람’의 등식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작은 차가 무시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덕성여대 김미리혜교수(심리학)의 설명. “덩치 큰 사람에게 매맞은 사람은 모든 큰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 ‘큰 사람〓무서운 사람’으로 의식이 일반화하는 것.

다른 덩치 큰 사람이 따뜻하게 대해줬을 때 비로소 ‘착한 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변별력이 생긴 뒤에도 머리로만 알 뿐 상당기간이 지나야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작은 차를 타는 권위 있는 사람도 있다’는 변별력은 갖고 있지만 아직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단계. ‘경차 컴플렉스’는 이같은 문화적 요인과 더불어 “처지가 나빠져서 작은차로 바꿨다”는 자괴감에서 나온다.

▼대접은 바뀌는데…▼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시대. 그래도 ‘애마’만은 시키는 대로 충실하게 움직인다. 유지비가 없으면 경차로 바꾸고, 차 살 돈 없으면 오토바이라도 타고 다니며 지배욕(支配慾)을 발산하고 싶어하는 게 남성.

타던 차를 팔고 경차를 산사람(아토스 31.5%, 마티즈 40.5%) 중 대부분이 김과장처럼 왕년엔 큰 차 소유자로 경차컴플렉스를 느낄 ‘잠재력’을 갖고 있는 셈. 하지만 국내 승용차판매량의 경차비율이 IMF시대 시작전의 8%수준에서 최근 49%로 치솟으면서 경차에 대한 대접도 다소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고질라 비켜라!▼

마력(馬力)과 권위에 대한 그리움만은 어쩔 수 없는 일. 회사원 이지형씨(26)는 차를 개조해 엔진성능을 높이는 ‘튜닝’을 했다. 마티즈의 흡입계통을 손봐 엔진의 힘을 약 2마력 높였다.이젠 신호대기 때 맨 앞에 서도 주눅들지 않는다고. D그룹 최대리(29)는 아토스 뒷유리에 해병전우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나 무서운 놈이야, 빵빵대지마’, 시위용. “확실히 예전보다 뒤에서 들리는 경적소리가 줄어들었다”고 뿌듯해 한다.

서울성의학클리닉 설현욱박사의 이런 설명도. “남자들이 차를 고르는 기준은 성적능력과도 관계가 있다. ‘힘센’ 남자는 성능좋은 차를 고르는 경향이 강하다. 컴플렉스는 ‘욕구’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차를 골랐을 때 생길 가능성이 높다.”

▼컴플렉스는 없어질까▼

멋쟁이 경차가 인기를 끄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 다만 IMF시대가 끝나도 이 현상이 지속될지는 미지수.

고려대 한성열교수(사회학). “IMF사태로 경차로 바꾼 사람은 경차가 대접받는 분위기가 돼도 컴플렉스에 시달리다가 돈이 생기면 다시 큰 차로 돌아 갈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문화도 보다 합리적 신사적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큰 차 타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풍조가 나라 망치는 데 한 몫 했다는 것을 알고 합리적인 소비패턴을 체득하는 게 중요하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