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수일/고용안정을 위한 연봉제

  • 입력 1998년 6월 22일 19시 37분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전에도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거론될 때면 고임금은 빠짐없이 도마위에 올랐었다.

정부는 임금상승 억제를 선창하고 기업들은 임금총액 동결로 화답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근로자들에게는 그때만 해도 좋은 시절이었다. 이제는 임금의 일부를 반납해도 일자리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탓에 능력 및 실적과 관계없이 매년 승급이 기대되는 현행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되고 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연봉제 도입이 그 예다.

▼ 해고-재취업 원활해져 ▼

원래 연봉제란 연간으로 임금을 정하는 임금형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연봉제는 현행 연공급이 갖고 있는 경직성에서 탈피하고 노동에 대한 동기유발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기본급과 각종 수당 상여금 등 복잡한 임금체계로 인한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 외에도 연봉제는 고용안정을 위해 긴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리해고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하드’한 방식이라면 연봉제는 재취업을 원활하게 해주고 해고를 최소화하는 ‘소프트’한 수단이다.

노동의 유연성을 주장하는 근거로는 흔히 ‘해고의 역설’을 든다. 고용에 관한 규제수준이 낮으면 해고가 쉬워지지만 노동시장의 자율적 기능이 활발해져 결국은 실업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해고가 쉽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을 것 같지만 해고되는 근로자의 80%정도가 6개월 이내에 재취업함으로써 실업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해고의 역설이 작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유연한 임금체계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임금과 상여금이 개인의 생산성 및 경영성과에 따라 탄력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해고된 종업원은 개인의 생산성에 걸맞은 처우로 쉽게 재취업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연공급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경우 해고의 역설이 제대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연공급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 제고 등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에 비해 인건비가 높아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업경영이 악화되고 정리해고가 가능할 때 근속연수가 많은 계층은 기업으로부터 우선적으로 배출되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배출된 인력은 재고용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에 비해 인건비가 낮은 젊은 인력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 및 회사의 생산성과 무관하게 보수가 지급되는 경직적인 연공서열성 임금체계가 고연공자의 자리를 불안하게 하는 동시에 실직자의 재취업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공형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실업대책과 재고용문제를 다루는 것은 실효가 없다. 연봉제를 비롯한 성과급을 도입함으로써 임금체계를 유연화하는 작업이 노동의 유연화 노력과 더불어 추진되어야 한다. 종업원 입장에서도 연봉제를 무조건 거부하고 현행 연공형 임금체계를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 고용의 가능성을 억제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연봉제가 소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려면 선결돼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절차의 공정성이 확보돼야 한다. 절차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종업원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보상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 경우 차별급여가 동기유발을 성공적으로 일으킬 수 없음은 물론이다.

둘째, 경쟁속의 협력을 지향하는 코피티션(Co―opetition)을 유도해야 한다. 연봉제가 종업원들간에 과도한 경쟁을 유발시켜 경영성과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경쟁속 협력 유도해야 ▼

예컨대 미국의 연봉제는 한정된 임금 총액을 둘러싸고 종업원간에 비생산적인 경쟁을 유발시켜 기업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따라서 부서 또는 팀의 업적을 개인의 평가에 일정 비율 반영시킴으로써 건전한 경쟁과 더불어 상호 협조 분위기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가치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변화과정에서 저항이 없으면 이는 변화가 아니라는 말도 있듯이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종업원들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연봉제 도입을 가치관 개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즉 연봉제 도입을 조직의 전략이 요구하는 새로운 조직문화 구축의 계기로 삼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고수일(현대경제硏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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