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앤드루 그로브 美인텔회장

입력 1998-05-12 19:24수정 2009-09-25 13:39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불황기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뒤지고 망하게 마련입니다. 아시아가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지금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대만 타이베이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11,12일 이틀간 열린 제3회 아태지역 인텔 테크놀러지포럼에 참석한 앤드루 그로브 인텔회장(62)은 기조연설과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의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인텔도 D램 메모리를 처음 개발해놓고도 80년대 일본 신생업체들에 밀려 2억달러의 적자를 내고 망할 뻔했다”며 “하지만 1만명의 임직원을 해고하고 메모리 개발사업을 포기하는 대수술을 거쳐 당시로는 도박과 같은 비메모리 분야에 집중 투자해 재기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전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9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제조회사 인텔. 그로브회장은 지난 11년동안 인텔의 총사령관을 맡아 인텔을 최정상의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로브회장이 대만을 찾은 11일 대만 주가가 168.04포인트나 치솟아 그의 비중과 인텔의 위상을 실감케 했을 정도.

그는 지난 몇년간 전립선암으로 투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만 방문에 앞서 중국의 상하이 베이징 등을 잇따라 방문해 인텔 협력회사와 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대장정’을 해낼 만큼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차세대 컴퓨터 환경은 고성능의 값싼 PC와 인터넷이 세계를 주도할 것입니다. 인텔은 이미 21세기초 전 세계 10억대의 컴퓨터가 연결되는 시대를 향해 뛰고 있습니다.”

그는 연설중에 펜티엄Ⅱ칩이 내장된 PC를 가지고 메모를 하면서 컴퓨터업계의 신화적 인물로서의 면모와 인텔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이중 그로브회장의 얼굴이 화상입력카메라를 통해 화면에 비쳐지고 컴퓨터 농구게임을 할 때는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로브회장은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지적 능력을 능가할 순 없다”며 “6개월된 어린이는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만 펜티엄Ⅱ칩은 그렇지 않기때문에 컴퓨터만이 가진 뛰어난 연산처리 능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PC는 인간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기술은 그 발전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쓸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인터넷의 무분별한 사용에서 빚어지는 불건전 정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음란 사이트같은 것은 굳이 규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섣부른 규제는 오히려 인터넷의 최신 기술을 발전시키고 인터넷을 만끽하는 자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얻은 정보가 좋으냐 나쁘냐의 판단은 결국 그 자신에게 달린 것입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인텔. 이렇다할 기념행사도 없이 그로브회장이 주축이 되어 ‘디지털 시대의 어느 하루(One Digital Day)’라는 기념 서적만 발간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인텔에 대한 마이크로칩 경쟁업체들의 공세가 안팎에서 만만치 않다. 인텔 스스로도 최근 3천명을 감원하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할 만큼 또한번의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 서있다.

정보화 진전과 경쟁에 대한 그로브 회장의 생각은 단호하다. “외곬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인텔은 업계 선두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반도체 전쟁을 결국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로브회장은 “새로운 질서에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며 “초긴장 상태로 항상 경계하는 자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앤드루 그로브회장에 관한 활동과 버추얼사무실과 연설문 등은 인터넷 ‘www.andygrove.com’에서 만날 수 있다.

▼ 앤드루 그로브 누구인가 ▼

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태인으로 출생. 나치 점령과 스탈린의 철의 장막 통치 아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성장했고 56년 헝가리 10월 혁명이 실패한 직후 스무살 나이에 오스트리아를 거쳐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이민했다.

60년 뉴욕시립대를 수석졸업(화학공학 전공)했고 63년 UC버클리대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실리콘밸리 페어차일드 반도체연구소에 입사하면서 컴퓨터업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67년 동 연구소 부소장. 68년 보브 노이스, 고든 무어와 공동으로 벤처기업 형태의 인텔을 창업한 그는 79년 인텔사장, 87년 인텔대표이사(CEO)회장직에 올랐다. 93년 실리콘밸리 세계포럼에서 ‘올해의 시민’으로 선정됐으며 작년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디지털혁명의 공로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컴퓨터업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기업경영을 하면서도 스탠퍼드대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취미는 사이클링과 스키.

〈김종래기자〉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