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인터뷰]英 브리티시텔레콤 본필드 사장

  • 입력 1998년 4월 16일 07시 50분


대담=이인길 정보산업부장

세계적인 통신업체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의 피터 본필드사장은 1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넷 인터뷰를 통해 “영국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를 산업구조 재편의 기회로 활용했다”며 “한국이 IMF위기를 극복하고 과거보다 더 강력한 모습으로 세계시장에 부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대기업이 급속도로 세계화하고 미국 유럽 기업이 잇따라 한국에 진출하고 있어 BT에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해 한국에 투자할 의향이 있음을 시사했다.

▼ 9세 이상 전자사서함 실시

―정보통신업계의 리더로서 21세기 정보 사회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기업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무심하게 흘려보낼 여유가 없다. BT 같은 통신업체는 더욱 그렇다. 앞으로 1천년이 지난 1천년과 어떻게 다를지 예측해 보면 유선전화 이동통신 비디오 데이터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이 우리 생활을 엄청나게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국민 전자사서함서비스(Mill―e―Mail)를 곧 실시한다. 9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전자우편 주소를 주는 것이다. 전자우편과는 좀 다른 것이다. 인터넷 전자우편을 이용하려면 특정 업체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전자우편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표준을 개발하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새로 출현할 제품이나 서비스는 어떤 것이 있을 것으로 보며 BT는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는가.

“BT 연구소는 5∼15년후에 고객이 필요로 할 미래기술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추진중인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네트섬(NetSumm) 재스퍼(Jasper) 가상실재(Virtual Presence) 등이 있다. 네트섬은 인터넷에서 방대한 양의 자료를 검색해 사용자가 읽기 쉽게 요약본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다. 현재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재스퍼는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이터베이스(DB)를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와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전자비서’ 같은 서비스다.가상실재는 사용자가 가상공간에서 경험하는 내용을 현실과 똑같이 느끼도록 하는 기술이다.”

―정보의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인터넷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산업 조직체 국적 등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정보통신시장도 점차 ‘세계화’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직장이나 가정, 여행도중 등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데이터통신 서비스를 원한다. BT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BT인터넷은 가정주부 자영업자 등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가 쉽게 쓸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다.”

―정보통신업체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지녀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어떤 경영철학을 갖고 있는가.

“미래에는 이런 기업이 성공한다. 직원들이 각자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찾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기업이다. 경영자는 직원들이 이런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영자에게 직원의 권한을 강화해주는 일이 정보에 신속하게 접근할 권한을 주는 일보다 어렵다. 그러나 경직된 관리체제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정보화 시대의 장점인 유연성과 고객 요구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살릴 수 없다.”

―한국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경제에 조언을 한다면….

“위기극복의 해법은 한국 정부와 국민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IMF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면 좀더 투명한 경제시스템, 보다 강력한 금융제도, 좀더 신중한 투자정책이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그러자면 짊어져야할 짐이 무겁지만 한국이 언젠가 과거보다 더 강력한 모습으로 부상할 것으로 확신한다.”

▼ 기술혁신 통해 우위 확보

―영국도 한 때 IMF구제금융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영국은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가.

“영국은 IMF지원을 계기로 산업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에 맞게 고용구조를 바꾼 것이다. 강력한 중앙은행, 투명한 금융제도, 정부의 책임있는 거시(巨視)경제정책이 IMF체제를 벗어나는데 한몫을 해냈다.”

국영기업이었던 BT의 민영화는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민영화 초기인 84년과 97년의 실적을 비교하면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직원수는 25만명에서 12만7천명으로 줄었지만 매출은 69억파운드에서 1백50억파운드(34조원)로 늘었다. 주가도 1.3파운드에서 4.5파운드로 뛰었다.

무엇보다 고객 만족도가 높아졌다. 종전에는 전화신청을 하면 평균 3주는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은 80%가 설치를 요청한 날짜에 맞춰 전화를 놔준다. 애프터서비스도 80년대에는 근무시간중에만 가능했지만 요즘은 24시간 가동된다. 반면 통신료는 실질요금으로 55%나 인하됐다.

한국통신 등 민영화를 추진하는 국내 공기업 직원들도 이런 경험을 배우기 위해 줄지어 BT로 달려가고 있다.

▼ 84년 민영화 「고객중심」개혁

―영국 공기업 민영화의 성공요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나는 96년에 BT에 들어왔기 때문에 민영화 경험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BT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적이고 고객중심적이며 경쟁력을 갖추도록 구조조정(리엔지니어링)을 했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유럽통신시장이 전면 개방됐다. 한국도 세계무역기구(WTO)통신협상 결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장이 개방되고 있다. 유럽통신시장 개방후 어떤 변화가 있는가.

“80년대초에는 BT가 영국 통신사업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사업이 경쟁이다. 영국의 통신시장 자유화 조치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통신산업은 독점과 정부의 통제, 관료적인 문화로 특징지워진다. 이것이 소비자의 요구와 통신서비스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영국에서는 자유화와 함께 이 장벽이 무너졌다. WTO체제와 함께 이 물결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자유화를 경험한 BT는 이런 격랑을 헤쳐갈 준비가 돼있다. 자유화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고객의 요구에 철저하게 맞추는 동시에 기업은 자기 혁신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기술을 새 시장에 내놓으라’는 것이다.”

―글로벌 통신사업의 세계적인 리더로서 BT의 강점은….

“소비자가 BT를 선택하는 이유는 네가지다. 탄탄한 재정력, 기술혁신 능력, 광범위한 데이터통신망 서비스, 세계적인 고객관리체계가 그것이다.”

―지난해 미국 제2의 장거리전화사업자인 MCI를 인수하기로 발표했다가 무산됐다. 글로벌 통신사업에 혹시 차질이 있는 것은 아닌지….

“BT와 MCI는 당초 계획했던 합병을 더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대신 미국 제4의 장거리전화사업자인 월드콤이 MCI를 인수할 것이다. BT가 보유한 MCI 지분 20%는 월드콤에 70억달러를 받고 매각할 예정이다. MCI와 글로벌 통신망사업을 위해 만든 합작사 콘서트는 MCI의 지분을 그대로 존속하기로 했다. 현재 콘서트는 5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 3만7천여 기업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포천’지가 뽑은 세계 5천대 기업중 40%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콘서트는 설립 4년만에 20억달러의 계약고를 올렸다.”

▼ 통신업체 「사이버뱅킹」주도

―영국은 전통적으로 금융업에 강하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도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업체로서 금융산업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정보통신기술은 은행과 고객의 기본 관계를 변화시킨다. 금융거래가 특정 장소, 특히 시내 번화가에서 이뤄진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대신 가상공간에서의 금융거래가 빈번해졌다. ‘사이버 뱅킹’에서 화폐는 은행의 컴퓨터 메모리 속에 저장된 숫자가 되고 금융거래는 기업통신망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이터가 된다. 통신업체와 은행이 신상품개발에 자연스럽게 손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통신은 은행을 ‘사이버’금융에 뛰어들게 만든 디딤돌 역할을 했다.”

본필드사장은 96년에 데이콤과 합작사 설립을 위해 방한한 적이 있다. 그후 지분문제로 합작사 설립이 백지화됐지만 BT는 여전히 한국시장에 관심이 많다.

한국에 대한 투자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통신시장 가운데 하나이며 BT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BT의 전략은 다국적 기업의 요구를 만족시키는데 있고 현재 다국적 기업들은 아시아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다국적 기업의 활동이 활발하므로 BT의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세계적인 통신사업자가 한국에서 고품질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이고 공정한 시장환경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리〓김학진기자〉

◈ 「본필드」누구인가

피터 본필드(54)는 96년 1월 일본계 영국 컴퓨터회사인 ICL의 회장에서 세계 5위 통신업체인 브리티시텔레콤(BT) 사장(CEO)으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BT 민영화의 ‘대부’인 이안 밸런스회장(55)은 그를 영입하면서 ‘영국의 아이아코카’라고 추켜세웠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ICL을 14년간 맡아 일본 후지쓰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고 시스템통합(SI) 사업을 적극 추진해 흑자기업으로 돌려놓았기 때문.

본필드사장은 영국에서 출생했지만 미국 반도체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오래 근무해 미국적인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 있다. 훤칠한 키에 감정표현이 솔직하고 부하에게 권한을 많이 이양, 웬만한 일은 맡겨두는 스타일.일본과 오랫동안 사업적인 관계를 맺어와 아시아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 깊다.

BT 직원들에게 “영국 중심은 더이상 곤란하다” “임원이 되려면 외국 근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등 ‘글로벌마인드’를 자주 강조한다.

지난해 미국 제2의 장거리통신회사 MCI 인수를 추진하면서 “필요할 경우 일본 NTT와 제휴해 AT&T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밝혀 글로벌통신사업자로서 BT위상을 드높였다.

밸런스회장이 올 여름 회장직에서 물러날 예정이어서 BT는 앞으로 본필드사장의 독주체제로 굳어질 전망이다.96년 엘리자베스영국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아 본필드경으로 불린다.

〈김학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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