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희제/백발되어 다시찾은 고국

  • 입력 1998년 3월 12일 19시 47분


“항상 골방에 갇혀 사는 것처럼 답답했는데 이제 가슴이 후련합니다.”

12일 정오 인천 남구 관교동 동아아파트 3동 204호.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부녀봉사회 우봉영(禹鳳永·77)회장의 집에 11일 밤 귀국한 사할린 동포 1세 14명이 모였다. 부녀봉사회가 인천시민으로 함께 살게된 이들을 초청, ‘고국의 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대한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영구귀국, 새 보금자리인 부평구 삼산동 주공임대아파트에서 첫밤을 보냈지만 이들은 여전히 귀국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듯 들뜬 모습이었다.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 4명과 5쌍의 부부는 “이제 고국에 뼈를 묻게 됐으니 여한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봉사회원 20여명이 각자 집에서 준비해온 잡채 도라지나물 젓갈 등 ‘한국 음식’을 들며 차츰 고국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융숭한 대접은 처음 받아봅니다.”

“60년 전에 먹던 음식 맛이 되살아나네요.”

식사가 끝나고 부녀봉사회 회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스웨터를 1벌씩 선물하면서 정담은 더욱 깊어졌다.

43년 고향인 경남 양산에서 사할린으로 끌려갔던 우영준(禹英俊·77)씨는 “밥 한 공기로 허기를 채우며 석탄채석장 비행장 철도공사 현장에서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했다”며 “전쟁이 끝나자 조선사람은 내팽개치고 일본인들만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회상했다.

20년 전 남편을 잃었다는 김춘자(金春子·69)씨는 “그동안 사할린에서 열심히 일해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남편은 고국을 그리워하다 끝내 화병으로 돌아갔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또 박노준(朴魯俊·78)씨는 “사할린 동포 1세는 이제 6백명도 남지 않았다”며 “이들도 하루 속히 귀국해 사할린 동포 정착촌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박희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