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지구촌리포트 ⑨]세계 華商 네트워크

  • 입력 1998년 3월 12일 08시 19분


인도네시아의 화교 리하오(栗浩)는 자카르타 시내에 자리잡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켰다. 그는 얼른 인터넷에 접속해 프랑스에 진출해 있는 중국계 섬유무역기업을 찾았다.

엔터키를 두드리자 바로 화면에 알파벳 순으로 회사의 명단이 나타났다. 파리시 근교에 있는 아지아티크란 회사에 전화를 걸어 프랑스제 고급 레이스를 주문했다.

그 회사의 사장이 화교출신이라 굳이 프랑스어나 영어로 불편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손쉽게 거래를 성사시켰다.

과거 이런 교역을 하려면 며칠씩 걸리던 일을 이제는 하루만에 끝낼 수 있게 됐다.

현재는 간단한 기업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지만 앞으로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엄청난 양의 무역 거래가 순식간에 성사되고 거대한 돈이 오고가게 될 것이다.

리하오가 접속한 인터넷 사이트는 95년 12월 싱가포르에서 뜬 것이다. 이 사이트는 싱가포르 세계 화상(華商) 네트워크(WCBN·World Chinese Business Network)가 띄웠다. 싱가포르가 세계 화상의 중심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사이트는 단순한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라 세계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가 더욱 주목하게 될 것이다.

이 네트워크(wcbn.com.sg)는 세계 화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 제공한다.

중국계 기업인의 동정부터 그들이 운영하는 개별기업이나 기업단체의 자료에 이르기까지 화상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지금도 이 네트워크에 쉼없이 입력되고 있다.

시작 당시 빈약하기 그지없던 이 사이트에는 2월말 현재 53개국 10만여 화교기업(華商)의 사이트가 맞물려 있다. 조회수는 하루 15만여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번화가의 중국 음식점중 어느 집이 어떤 음식으로 유명한지 알 수 있다. 나라마다 어떤 종류의 중국계기업과 협회가 있는지 검색할 수도 있다. 원예업에서부터 우주항공산업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에 얼마나 많은 화상이 분포해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나라마다 기업별로 취급품목과 연락처가 충실하게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뜻 여느 사이트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사이트의 출현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거대한 자본으로 이루어진 화교 네트워크가 정보사회를 맞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통신망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부분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화상들이 기존의 방(幇)이라는 지연 혈연 관계 대신 세계각국의 사업정보를 수집하고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현대적 채널이 마련된 셈이다.

현재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화교의 인구는 2천5백만명 정도. 이중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연합(ASEAN) 5개국에 거주하는 화교는 ASEAN 총인구의 6%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은 ASEAN 총자본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화교가 세계적으로 주무르고 있는 돈은 자그마치 3조 달러나 되고 한해 생산규모는 96년 한국의 국내총생산 4천8백여억 달러에 맞먹는 4천5백억달러에 이른다.

화교기업들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금융업 분야에서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태국의 방콕은행, 싱가포르의 화교은행은 물론 ASEAN 각국의 주요 은행 보험회사는 모두 이들의 손아귀에 있다.

이런 화교의 자본이 현대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이게 되면 대단한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현재는 동남아 지역으로 국한된 화교자본의 영향권이 확대되어 전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수도 있게 된다.

거대한 중화권을 연결해주는 강력한 고리의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은 바로 싱가포르.

91년 싱가포르에서 리콴유(李光耀) 전총리의 발의로 ‘제1회 세계 화상대회’가 개최되면서 이미 신호탄은 올랐다. 현재 중국∼싱가포르∼제삼국으로 이어지는 화교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WBCN을 만든 싱가포르 중화(中華)총상회(SCCCI·Singapore Chinese Chamber Of Commerce & Industry).

지난해 이 총상회를 찾은 외국 방문단은 모두 2백50여 단체. 주목해야 할 것은 방문단의 국적이다. 절반이 넘는 1백30개가 중국으로부터 왔다. SCCCI는 중국 경제관리를 교육시킨 뒤 중국대륙으로 되돌려 보내는 ‘훈련소’ 역할을 하고 있다.

97년 한 해 동안 3백50여명의 중국관리가 SCCCI에서 외자유치 회계 도시관리 등을 배우고 돌아갔다.

이런 교류도 물론 중요하지만 총상회가 앞으로 더욱 중요시하는 것은 현대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강좌도 실시할 계획이다.

SCCCI 관계자는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달할 것에 대비해 인터넷 뿐만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든 곧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정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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