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구촌/아사히]환자의 「자기 치료 결정권」

  • 입력 1998년 2월 12일 08시 27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래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윤리다. 그런데 의사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환자가 생명을 걸고 지키려는 가치와 대립할 경우 의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또 환자는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원고인 환자는 수혈을 거부하는 종교단체 신자로 종양제거 수술을 앞두고 의사에게 자신의 신앙을 여러차례 고백, 이해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료팀은 사전에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면 수혈도 고려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며 수술시 실제로 대량 출혈이 있어 수혈이 이뤄졌다. 도쿄 고법은 “치료 방법이 환자 생각과 일치하지 않으면 의사는 이를 환자에게 설명해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관련 절차를 게을리한 의료팀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타당한 판단으로 생각한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이 판결에서 재판부는 “자기 인생의 존재 방식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지적, 이른바 ‘존엄사(尊嚴死)’를 선택할 자유도 언급했다. 전통적인 의료관으로 보면 “의료는 환자 구명이 제일의 목표로 의사는 가능한 구명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며 의사진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자기결정권’ 존중은 판례와 의학계내의 큰 흐름이다. 문제는 ‘자기결정권’의 내용을 어떻게 풍부하게 만들어가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실태를 살펴보면 환자가 이유도 모르는 채 의사의 제안에 수긍해버리는 ‘의식’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환자가 의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의논하고 자신이 원하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정리·도쿄〓윤상삼특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