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IMF 시대의 세금

  • 입력 1998년 1월 14일 19시 42분


작년 이래 정부의 세제(稅制)개편은 부족한 세수 메우기에만 급급한 인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실업과 감봉 고물가 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가계를 정책적으로 배려한 흔적이 없다. 우리의 세제 세정(稅政)은 조세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마른 수건도 비틀면 물이 나온다’는 식으로 세금을 쥐어짜면 중산층과 서민은 어쩌란 말인가. 정부는 휘발유 등에 붙는 교통세 및 특별소비세를 대폭 올려 올해 2조5천4백억원을 더 걷기로 했다. 여기에다 이자소득 원천징수세율 인상으로 1조3천억원, 14일 발표한 세제조정으로 1조원을 더 징수한다는 것이다. 모두 4조8천4백억원의 세금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예산감축만으로는 세수부족을 메우기 어려워 세금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조세저항이 작고 무차별적인 간접세 위주로 세수 확보에 나서는 징세편의적인 자세는 버려야 한다. 금융실명제를 유보시킨 것도 공평과세와 조세정의에 역행한 처사다. 효과가 의문시되는 무기명장기채권 발행과 금융종합과세 유보는 소수 부유층, 그것도 햇볕을 꺼리는 지하자금에 특혜를 준 조치다. 그 결과 서민계층 부담이 상대적으로 늘고 빈부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세제조정의 골자는 각종 세금감면과 비과세대상의 축소 또는 폐지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키로 한 것은 옳다. 정부는 말로만 그치지 말고 소득은 많으면서도 세금부담은 봉급생활자보다 적은 이들 계층에 대해 철저히 과세해야 한다. 다만 생필품을 주로 취급하는 농수축협단위조합이나 일부 사설학원 등에 대한 과세 강화는 물가에 전가될 가능성이 많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재벌총수 아들이 수백억원어치의 계열사주식을 인수하면서 세금은 몇푼 안낸다든지 미성년자가 1백억원대의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세제는 분명 문제다. 96년 한해 동안 부과하고도 못 거둔 국세는 6조8천억원에 달했다. 이러고도 유리지갑처럼 소득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봉급생활자의 세금만 늘린다면 말이 안된다. 차기정부는 눈앞에 닥친 세수부족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상속 증여세를 비롯한 세제상의 미비와 징세행정의 허점을 찾아내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IMF시대의 고통은 고소득층보다 서민층에 훨씬 심하다. 주요 생필품값이 연초들어 20% 넘게 급등하고 고금리로 아파트분양을 포기하거나 집을 줄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실업증가의 여파로 가계파산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빈부차가 심해지면 사회는 불안해진다. 서민가계의 부담을 줄여 IMF한파를 견뎌내도록 세제지원같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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