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하노이]한정현/순박하고 자존심 강한 민족

  • 입력 1997년 10월 27일 20시 13분


하노이의 노이바이국제공항에 내린 것이 지난해 이맘때였다. 밤이 이슥한 시간, 낡고 침침한 공항건물은 시골 정류장같아 괜스레 아이들과 집사람 눈치가 보였다. 트랩에 대기중이던 셔틀버스는 폐차시한이 훨씬 지난 시내버스였다. 창문에는 일본어 안내문이 반쯤 벗겨진 채 남아 있고 바닥은 기름에 절어 양복바지를 추슬러야 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외국 승객들 앞으로 택시기사 껌팔이 거지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손을 내밀었다. 고국에서 송별회 때 불렀던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디로 갔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등학교 때는 부산 부두에 동원돼 파월장병 형님들에게 태극기도 흔들고 노래도 부르면서 막연한 동경심마저 품었었는데…. 이제는 새로 부임해 오는 주재원들에게 「기사 십계명」 「식모 십계명」을 들려주고 가라오케에서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를 부르는 여유도 생겼다. 시내에서 「농장」 「△△식당」이라고 씌어진 트럭을 보면 「언제 저런 회사도 진출했나」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하노이는 보기보다 힘들고 험한 시장이다. 자본이 부족하고 구매력에 비해 각국에서 대거 진출, 경쟁이 심하다. 의료 교육시설은 물론 생필품도 부족하다. 이런 환경에서도 우리 상사맨이나 기업인들이 열심히 땀흘린 대가로 양국 교역이 쑥쑥 늘어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닮은 점이 많다. 외세에 저항해 온 역사도 그렇고 사고방식도 이웃 태국이나 캄보디아와는 달리 우리와 매우 흡사한 것 같다. 자존심이 강하나 순박하고 검소하며 여건만 갖춰지면 부지런히 일한다. 이런 면이 양국이 단기간에 거리를 좁히는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정현<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하노이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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