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시집 「그리운 여우」펴낸 안도현씨

  • 입력 1997년 9월 9일 07시 57분


들길을 걸을 때면 잊지않고 제비꽃의 자줏빛 볼을 톡, 건드리며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라고 눈 인사를 나누는 시인. 들비둘기가 떨어뜨리고 간 거무스름한 깃털 하나에도 「한때 이것은 숨을 쉴 때마다 발랑거리던/존재의 빨간 알몸을 감싸고 있었을 것」이라며, 깃털 하나의 무게로 가슴이 쿵쿵 뛰는 시인. 교무실에 날아든 새 한마리가 「유리창에 하늘을 붙여놓은 줄 모르고」 그리로 힘껏 날아가다 그만, 머리를 부딪쳐 죽은 그 자리에서 「인간의 폭이란/한없이 좁은 것이어서//저걸 어쩔까, 어쩔까/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발만 동동」 굴렀던 시인. 시인 안도현씨(36). 최근 선보인 그의 다섯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사)가 뜨고 있다. 그의 시만큼이나 요란하지 않고 잔잔하게, 그러나 힘 있게 떠오르고 있는 것. 격렬한 소음의 시대에 피어나는 서정의 힘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눈 그친 산길을 걸어본 자는 알리라. 「눈 그친 지구 위에」 나 있는 산길을 걷게 되면 누군들 경배하지 않으랴. 토끼가 버리고 간 토끼 발자국을. 상수리나무가 손을 놓아버린 상수리 열매를. 되새떼가 알알이 뿌려놓고 간 되새떼 소리를…. 서정의 시심에도 굴곡은 많았다. 전교조 활동과 관련, 89년 해직됐다 3년전 복직했다. 그리고는 다시 사표를 냈다. 시만을 쓰기 위해서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는 원광대를 나왔고 재학중 동아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전북 이리와 장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시도 썼다.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者하고는/인생을 논하지 말라」(「인생」) 형제처럼, 동무처럼 붙어 지내는 섬진강 시인(김용택)과 PD 소설가(이병천)는 입맛을 다셨다. 『허. 거, 참!』 영남에서 자라 호남에서 살고 있는 그의 시는 시조의 전통과 판소리의 유장함을 함께 아우른다. 『경상도 쪽이 직조(織造)되고 만들어지는 시라면 전라도 쪽은 터져나오는 시라고나 할까요』 그래선지 그의 시는 「바느질」은 많이 하지만 「실밥」은 보이지 않는다. 「햇살의 알맹이처럼 빨갛게 몸을 달군 잠자리떼」 「가을날 후미진 골짜기마다 살 타는 냄새 맑게 풀어놓고/서러운 뼈만 남고 싶은가」(단풍나무) 「나, 호박꽃 주위에서 붕붕거리는 한 마리 벌이 될지도 몰라/세상 속으로 뚫린 귀가 있다면/두두둥 둥둥둥 두둥두 둥둥두둥/호박이 익어가는 소리도 들을 거야」 그의 시는 자연과의 친화 또는 교감 이상이다. 스스로가 자연 속의 일부로 녹아든다. 살아 숨쉬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냇물에 빠진 손가락지마저도 「반응」한다. 「시냇물의 힘줄을 팽팽하게 당기며/송사리는 송사리는 거슬러 오르고//그때//시냇물이 감추어 둔 손가락지 하나가/물 속에서 반짝, 하고 빛나네」(「여울가에서」) 『시는 따뜻한 국물 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이 이만큼 뒤엉키고 차가우면 됐지, 이만큼 때가 묻었으면 됐지, 무에 시까지 그럴 필요 있나요』 난해시는 질색이다. 「자기들끼리 뒤집어까고 빙빙 돌리는」 난해시, 그 넋두리에는 진절머리가 난다고. 자,이제 발길에 차이는 「애기똥풀」같은, 「그리운 여우」같은, 「잘 늙은 절 한채」같은, 편안하고 따뜻한 시 한편에 귀 기울여 보자.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몸을 바꿔 흐르려고/이리저리 자꾸/뒤척였는데/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그런 줄도 모르고/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겨울 강가에서」)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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