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세상읽기]떴니?… 떴다!

  • 입력 1997년 9월 6일 08시 14분


젊은 사람들이나 「뜬다」는 말을 쓰는가 했더니 요즘에는 비교적 점잖은 언론 매체에서까지 흔하디 흔한 말이 됐다. 「뜬다」는 말은 배처럼 두둥실 뜬다는 말은 아니고 해와 별이 뜨듯이 뜬다, 곧 스타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수많은 파생어가 나오는데 가령 뜨고 있다, 뜨려고 한다, 뜰 기미가 보인다, 뜰 수 있다, 엄마 나도 떴어, 난 뜨고 말 거야 같은 것들이다. 뜨는 해가 만물을 비추듯이 뜬 사람은 만인으로부터 우러름을 받고 돈방석에 앉아 금송아지의 두툼한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아,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나는 과외도 받지 않았고 교과서로만 공부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을 따름』이라는 말을 예쁜 앵무새처럼 되뇌곤 한다. 스포츠 정치 연예 예술 폭력조직 학교, 그 어떤 부문이든 간에 뜨는 게 유행이며 뜨기 위해 무슨 일이든 불사하는 게 유행이다. 그런데 세상은 만만찮게도(만만찮다는 말도 유행어다) 떠오른 것은 언젠가 가라앉는다는 법칙을 마련해 두었다. 이를테면 「2년생 징크스」 같은 게 그렇고 우울증 약물중독 정신분열을 동반하는 스타증후군이 그런 기제다. 반성도 진보도 없이, 남들이 띄워주고 태워주는 대로 돛대도 삿대도 없이 둥둥 떠다니다가는 언젠가 「아,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때부터 바람빠진 풍선처럼 추락하기 시작하고 그런 생각을 버리려고 다른 것들, 더 과도한 자극이나 더 큰 성공, 더 찬란한 조명, 극적인 도피처를 찾게 되면서 망조가 든다… 결국 뜨고 난 다음, 어떻게 처신하는가 하는 것도 그의 됨됨이며 그릇의 크기와 일치한다. 박찬호. 어느 경기에서 패한 뒤 그가 조국팬들의 극성스러운 응원이 부담스러워서 졌다는 말을 했던가 보다. 이제 미국이라는 야구 나라의 마운드에 발을 디뎌 제 틀거지를 잡아가는 선수를 두고 타격도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메이저 리그의 정복자, 불세출의 야구 천재, 불우한 환경을 딛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만인의 귀감이라고 종교적 신화적 차원으로까지 무동태워 놓았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오늘밤에도 무수한 별이 뜨고 질 것이다. 별 없이 못살 것처럼 똘똘 뭉쳐 요란떨 것도 없고 별이 지고난 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무지개를 향해 일제히 달려갈 것도 없다. 떠오른 별이 흔들림 없이 계속 떠 있는 데에도 좀 조용히 해주는 게 나을 터이니. 떠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고 하는 말이긴 해도.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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