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몰래카메라」경찰의 「인권불감증」

  • 입력 1997년 7월 17일 20시 48분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3층 숙녀복 매장 여자화장실에 비밀카메라가 설치된 사실이 본보에 특종 보도된 뒤 본사에 많은 여성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화장실내에서 내 행동이 모두 감시되고 있었다니 치가 떨린다』 『다른 백화점 화장실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짓을 하느냐』 여성 및 시민단체들은 백화점측의 비밀카메라 설치에 대해 『비열한 인권유린 행위』라고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불특정다수의 피해자를 위한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이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마디로 「인권 불감증」에 걸린 듯한 모습이다. 경찰 스스로 수사의 명분을 내세워 몰래 인권침해행위를 해왔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경찰이 『비밀카메라로 촬영하는 「도찰(盜察)」행위는 도청과는 달리 현행법상 처벌규정이 없어 본격 수사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일부 경찰관이 『옷 도둑을 잡으려고 설치한 것을 문제삼을 수 없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빌딩의 방범비디오 설치가 줄어들까봐 걱정』이라고 대꾸하는 데는 할 말을 잃을 정도다. 경찰 스스로 자신의 위상을 「도둑잡는 포졸」로 격하시키고 있다. 이번 비밀카메라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CC TV 전문 설치업자는 『초소형 비디오카메라가 최근 3년새 국내에서 1만개 이상 팔려 나갔다』고 증언했다. 도찰행위는 특정 백화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미 비밀카메라를 러브호텔에 설치해 녹화를 한 뒤 이를 무기로 공갈 협박하는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경찰은 첨단정보화사회로 발전할수록 도청과 도찰로 사생활을 침해하는 범죄행위가 늘어날 소지가 많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병기<편집국 사회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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