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송복자/칠순 어머니의 마음

  • 입력 1997년 7월 15일 08시 14분


후텁지근한 더위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베개를 옮겨 보아도, 이리저리 돌아누워 보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옆자리를 보니 가쁜 숨을 내쉬며 가끔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어머니가 돌아누우신다. 문득 어머니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언제 어머니가 저렇게 작아졌을까. 정말 저분이 우리 4남매를 낳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분인가. 내 어린 날의 어머니는 얼마나 커다란 모습이었는데…. 어떤 것도 불가능이 없는 것 같던 어머니였는데. 얼마전만 해도 햇살이 따사한 오후엔 시집을 손에 든 어머니의 눈 빛은 17세의 문학소녀 같았다. 친구들이 나를 보며 『너는 참 좋겠다. 칠순 나이에 시집을 즐겨 읽는 엄마가 있으니』하며 부러워했다. 매사에 부지런하고 모든 일에 끊고 맺음이 분명하신 깔끔한 어머니. 노령에도 쉬지 않고 소년보호소의 상담원으로, 교회 직분에, 노인들을 위한 봉사회에, 게다가 수험생인 손녀의 도시락을 싸느라 새벽부터 바쁘기만 하신 내 어머니. 지치지도 늙지도 않으실 것 같던 어머니.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아들집에도 손수 담근 김치며 된장 고추장 등을 날라주기에 바쁜 우리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며칠전 TV단막극을 보다가 갑자기 흑흑 흐느껴 우셨다. 딸만 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딸이 가정생활을 포기하고 보살피다 임종을 맞이하여 절규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엄마, 왜 그래? 왜 울어? 엄만 든든한 아들들이 있잖아』하고 달랬다. 그래도 계속 서럽게 울며 어머니는 『너 때문이야』하셨다. 칠순을 넘긴 노모가 이제 갓 오십인 딸의 내일을 염려하시다니. 남편없이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사는 나는 어머니 가슴속의 핏빛 접동새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또 한번 끄응 앓는 소리를 내신다. 서른여섯 꽃다운 나이에 홀로 돼 이제까지 살면서도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신 어머니. 가만히 작아진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안아 봤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그리고 정말 사랑해요』 송복자(서울 관악구 봉천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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