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지명관/王朝的 발상의 탈피

  • 입력 1997년 7월 9일 20시 07분


바깥 사람들은 우리나라 정치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머리를 갸우뚱거릴 듯 싶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도덕적인 정치를 내세우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대통령 아들이 감옥에 가야만 했다. 대통령이 되면 천문학적인 축재가 가능한 나라인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도 한국이구나…하고 바깥 사람들은 기특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이런 목소리가 한국의 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하야나 대통령선거 전야의 지나친 혼란은 원치 않는다는 국민적 합의로 여론은 목소리를 급격히 낮추고 말았다. ▼ 「國父」가 못된 대통령들 ▼ 밖에서 바라본다면 이런 정치적 격동을 별로 큰 사회적 변동없이 치러낼 수 있는 한국인이란 어떤 국민이며, 한국은 지금 어떤 역사의 길을 가고 있는가…하고 상당히 의아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저 북한의 오늘의 모습을 곁들인다면 정말 한반도의 정치, 한민족의 앞날이란 무엇일까…하고 생각하게 되리라. 그리고 남북이 통일되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 상상의 날개를 펴보려고도 할 것이다. 바깥 사람들의 이러한 의문이나 물음에 우리는 대답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해방이후 나라를 다스릴 책임을 지닌 분을 「국부(國父)」라고 불렀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집의 중심에 어버이가 있는 것처럼 나라의 중심에도 어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상하게도 처음 대통령 이외에는 그런 칭호를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 후 독재자들이 제 아무리 그런 칭호로 불리기를 갈망했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 이상으로 놀랄만한 것은 아무리 국부라는 칭호로 불렸다고 해도 국부는 집집마다의 어버이와는 달랐다. 그가 영구집권이나 절대권력을 누리려고 하면 단호하게 거부했다. 북한이 걸어온 길은 이와 정반대로 「어버이 수령」으로 굳어졌고 그 아들에게로 권력이 계승됐다. 우리는 지금까지 남북이 달리 걸어온 길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니, 민주주의와 전제주의니 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설명하려 해왔다. 그러나 동서대립의 이데올로기가 소멸된 오늘 새로운 해석을 도입해 보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지난 반세기를 오랜 유교적 전통에 근거한 왕조적(王朝的)발상에서 탈피하려는 몸부림의 기간이었다고 하면 그것은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한 터무니없는 해석이라고 비난받을 것인가. 권력을 쥐면 나라의 강력한 어버이가 되려고 했다. 그 주위에는 가신그룹이 형성됐고 권력자의 가족 친족이 그 특권에 참여했다. 그래서 국민은 무슨 일을 하려면 신문광고같은 데다 상소문이나 올리듯 머리를 조아리고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에 어진 임금, 인군(仁君)을 사모했던 것처럼 새 권력에 기대를 걸었다가는 배반당한 심정으로 「구관이 명관」이라며 도리어 지난날을 그리워했다. ▼ 국민 관심 잃은 정치 ▼ 권력자만이 왕조적 발상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니다. 국민도 그런 발상을 떨쳐버리지 못했었다. 지금 대통령 자리를 꿈꾸는 분들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져 가고 있다. 그런데 국민은 이상하리만큼 냉담하다. 왕조적 발상을 극복하려는 우리 근대사의 격동이 이제 커다란 고비에 다다른 것일까. 오늘도 민주화의 파도가 이 땅에서 크게 요동치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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