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의 눈]심판들이여 당당하라

  • 입력 1997년 6월 30일 20시 17분


지난달 29일 열린 프로복싱 WBA 헤비급 타이틀전은 팬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야수로 돌변한 타이슨이 마우스 피스를 뱉어내고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이성을 잃은 행동은 싸움판을 연상케 했다. 주심이 고통을 호소하는 홀리필드를 링닥터에게 보이고 타이슨에게 1차경고후 실격패를 선언한 것은 지극히 적절한 조치였다. 복싱이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가장 원시적인 경기임에도 그 속에는 엄격한 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KBS에서 LA다저스 박찬호의 경기를 올해부터 생중계하면서 국내 프로야구팬들도 이제 미국 메이저리그가 생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TV를 통해서 강타자 라울 몬데시가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다 그 자리에서 퇴장당하는 광경도 지켜봤다.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의 실정은 어떠한가.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면 우리 심판들은 선배인 각팀 감독이나 코치들의 등쌀에 눌려 소신있는 판정을 내리지 못한 채 한껏 움츠러들어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럽다. 일본 프로야구도 우리와 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상호교류 협정에 의해 일본에서 유니폼을 입은 한 미국인 심판이 한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돌아가버렸다. 선동렬이 소속된 주니치의 왼손 거포 다이호가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터뜨리자 호시노감독 등 코칭스태프까지 전원이 뛰쳐나와 거칠게 항의한 것이 그의 조기 귀국을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한다. 미국에선 다른 스포츠의 심판을 「레퍼리」라고 하는 반면 야구심판만은 유독 「엄파이어」라고 한다. 레퍼리가 경기진행을 도와주는 역할이라면 엄파이어는 법을 집행하는 판관이다. 야구는 룰이 가장 복잡한 만큼 심판의 권위를 더욱 인정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프로야구 심판들이여, 어떤 경우라도 소신을 굽히지 마라. 권위는 여러분 스스로가 찾아야 하고 지켜야 한다. 하일성〈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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