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절망에 대해 우아하게 말하는 방법」

  • 입력 1997년 6월 24일 08시 10분


(장석주 지음/프리미엄북스/6천원) 여기 한 욕심쟁이 쾌락주의자가 있다. 『절망이라도 좋다. 그 극한에까지 다가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산문을 쓴다. 생의 어떤 순간들을 스쳐간 풍경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다. 보다 정확히는 그 풍경에 서려있는 「서늘한 고요, 단단하게 응결된 침묵」을 그리고 싶어서다. 라일락 향기 짙은 5월의 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작가는 문득 가진 것이라곤 「세계에 대한 적의와 분노」밖에 없었던 스무살의 봄을 떠올린다. 풍요를 누리는 지금, 왜 삶은 그때만큼 생생하지 못할까를 생각한다. 「나는 잘못 든 길을 헤매느라 하루를 고스란히 날려보낸 스무살의 그 오류와 방황의 날들을 사랑한다. 나를 키운 것은 오로지 그 오류, 그 치기, 그 턱없는 슬픔, 어리석은 연애, 소모적인 방황들이다」. 도덕과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드높은 목소리들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맞고함친다. 「나는 생명의 즐거움들을 누리고 싶다.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향락, 포말처럼 일어났다가 찰나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아주 짧은 육체적인 쾌락을 누가 단죄하려 드는가.…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아니 되물릴 수 없는 오직 한가지 사실은, 내가 낯설고 비현실적인 이 세계에 불시착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한권의 산문을 엮고난 뒤 쾌락주의자이자 완전주의자인 작가는 부끄럽게 고백한다. 「침묵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너무나 많은 말들을 소진시켰다. 내 글들은 내가 소진시킨 말들로 소란스럽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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