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권력분산론의 虛와 實

  • 입력 1997년 6월 11일 07시 54분


한보와 金賢哲(김현철)씨 비리는 과도한 권력집중이 구조적 부패를 낳는다는 진리를 새삼스레 일깨워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예비주자들이 잇따라 권력분산론을 제기하는 것은 공감할 만하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을 총리와 내각이 나눠갖고 역할과 책임을 공유한다면 정권의 독선 독주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정치가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李洪九(이홍구) 李漢東(이한동)씨 등 여당 경선주자들이 제기한 권력분산론에 엊그제 李會昌(이회창)대표도 가담, 권력분산론은 이제 여당내 대세(大勢)로 자리잡는 느낌이다. 권력집중이 빚은 부작용과 폐해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그 반성으로 권력분산의 필요성을 논의하게된 건 자연스럽다. 다만 지금 여당내에서 번지는 권력분산론이 꼭 그런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담합을 통한 후보자리 쟁취나 나눠먹기의 냄새가 나는 게 사실이다. 우선 이대표가 총리의 부분 조각권(組閣權)보장 등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권력분산론을 주장한 배경부터 그렇다. 여권내부에서조차 다른 주자와의 연대 등 합종연횡(合縱連衡)을 염두에 둔 정략적 발언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내 최대 계파인 정치발전협의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계산이 깔려있다는 시각과 함께 이미 누구는 총리, 누구는 당대표, 누구는 국회의장이라는 식으로 자리나누기 구도를 짰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권력분산과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국가요직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어떻게 권력분산의 참뜻에 맞는가. 말로는 국회의장 등의 당내직선을 얘기하면서도 대통령후보가 담합에 의해 자리배치를 미리 끝낸 상태라면 실제 직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이 권력분산을 매개로 경쟁자를 물러앉히고 후보를 따내기 위한 수단으로 총리직까지 이용한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다. 현행 헌법은 권력분산을 위한 장치를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 대통령중심제지만 내각제적 요소가 많아 운용의 묘(妙)만 살리면 된다. 무슨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양 부산을 떨 것도 없다. 당내 경선구도가 혼미를 거듭하며 누구도 독자적 힘으로는 경선승리가 어려워지자 유불리(有不利)를 따진 끝에 권력분산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비치니 정략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본란은 지난 3월 내각제논란 때 언젠가는 내각제로 가는 것이 옳지만 나눠먹기나 정략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의 권력분산론도 마찬가지다. 경선주자들간의 합종연횡을 위한 편법으로 논의가 시작되어서는 안된다. 여당의 경선주자들은 만의 하나라도 권력 나눠먹기라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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