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 지상중계 21]

  • 입력 1997년 4월 8일 20시 08분


◇金元吉 국민회의의원 ―94년말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이 서울은행에서 제일은행으로 바뀐 경위는…. 『94년2월 은행장에 취임할 당시 서울은행은 자금면에서 아주 어려운 처지였다. 한 회사에 여신이 편중되면 어려운 상황이 닥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한보가 94년도에 공장을 새로 짓고 있어 자금 수요가 많을 텐데 앞으로 은행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시설자금이 조달되더라도 완공후에 운영자금이 필요하게 돼 주거래은행으로서 감당하기 어렵다. 주거래은행을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한보에 대해서는 소문없이 여신을 억제하고 회수하라고 했다. 여신이 줄어들면 주거래은행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94년말까지 3백억원을 한보로부터 회수했다』 ▼ 주거래은행 변경 지시 ▼ ―제일은행이 주거래은행을 맡지 않으려고 했다는데…. 『주거래은행이 되면 일이 많으니까 가능하면 안 맡으려는 분위기였다』 ―재임중 2년여동안 대출금의 규모를 3백70억원 가량 줄였는데 한보철강이 자금이 어려울 때 도와주라는 외압이 없었나. 『없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손을 떼려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경제수석으로부터 한보를 도와주라는 전화를 받았나. 『받은 적이 없다』 ◇李相晩 자민련의원 ―한보철강측이 92년 대선당시 가장 후원을 많이 한 업체라며 은행장들에게 홍보하고 다녔다는데 사실인가. 『들은 바 없다』 ―은행 부하직원에게 한보철강 여신규모를 조용히 줄이라고 지시했다는데 해당회사측을 불러 자금사정이 좋은 은행을 선택하라고 떳떳이 말하지 않은 것은 권력층의 지시에 반발하기 어려워서인가. 『그렇지 않다』 ―증인은 정태수나 권력층으로부터 대출청탁을 받고도 여신을 줄여 괘씸죄로 감옥에서 이 고생중이라는 소문이 많은데…. 내가 국제밸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 『내가 잘못해서 와 있다』 ◇金文洙 신한국당의원 ―무슨 사건으로 언제 구속됐나. 『96년11월22일 국제밸브와 관련한 금융부조리 문제로 구속됐다. 반성하고 있다』 ―다른 은행장들과는 달리 한보에 대한 대출외압을 거부했다는 주변의 얘기가 있는데…. 『외압은 없었다. 그런 얘기를 직접 들은 적 없다』 ◇金景梓 국민회의의원 ―서울은행 전무로 있으면서 한보에 대한 대출건을 결정할 때 이사회에서 어떤 발언을 했나. 『우리가 주거래은행이었기 때문에 대세에 따랐다』 ―행장으로 취임한 뒤 94년3월15일 서울은행은 문책적 기관으로, 은행장은 주의적 경고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는 은감원의 말을 듣지 않으니까 문책을 한 것이 아니냐. 『…』 ▼ 한보 대출부탁 없었다 ▼ ―정총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있나. 『없다』 ―94년 은행장 취임이후 한보측으로부터 대출을 늘려달라는 부탁이나 압력을 받은 적이 있나. 『없다』 ◇金在千 신한국당의원 ―지난 1월8일 4개 한보 채권은행단 은행장들이 회의를 열고 구제금융 대출조건으로 「정태수씨 일가가 주식을 양도하고 경영권을 포기하라」고 제시했는데 이같은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나. 『입장은 다르지만 채권단이 제시한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李良熙 자민련의원 ―과거 청와대의 張學魯(장학로)부속실장이 28억원을 받고도 그 중 21억원은 떡값이라며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았는데 증인은 국제밸브에서 1천만원을 받고 구속됐으니 청와대와 서울은행에 대한 떡값의 기준이 다른 것 같은데 이의가 없는가.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정태수씨가 문제있는 기업가로 생각되지 않나.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은행의 인사나 대출에 외압이 작용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있을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李國憲 신한국당의원 ―91년8월 한보에 대한 2백88억원 규모의 대출은 당시 전무로 있던 증인이 주도했나. 아니면 당시 은행장이 주도했나. 『통상 대규모 여신이 이뤄질 때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내가 주도한 것은 아니다』 ―그 대출을 했을 당시 정총회장을 만난 일이 있었나. 『만난 적은 있으나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한보에 대출할 때 신용조사를 했나. 『모르겠다』 ―한보철강이 당시(91.6∼92.5) 은행관리대상 업체였는지 알고 있었나. 『…』 ▼ 지급보증 아니라 연장 ▼ ―은행장에 재직중이던 95년6월 한보철강에 대해 2백36억원 대출지급보증을 한 것을 알고 있나. 『확실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 신규는 아니고 연장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갑자기 자금사정도 좋지 않은 한보에 이런 식으로 지급보증을 했나.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 ―이후에도 한보와 거래실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3백33억원 등 대규모 지급보증을 해 준 이유가 무엇인가. 『새로 한 것은 없다. 한보에 대한 대출을 줄여나가는 상황에서 신규지급보증을 섰을리는 없고 다만 연장했을 것이다』 ―당시 한보는 재무구조가 극히 악화돼 있었고 부도설이 시중에 나돌았는데 이를 몰랐나. 『그같은 사실에 대해 확실하게는 몰랐다』 ―부도설이 나돌고 있는 기업에 신중한 검토를 거쳐 대출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金民錫 국민회의의원 ―서울은행은 92, 93, 94년 3년 연속 은행감독원으로부터 정기감사를 받았다. 정기감사 결과 「한보가 문제가 있다」는 권고를 받았는데 시정조치를 하도록 한보에 지시했나. 『시정조치를 하도록 돼 있다』 ―그 이후에 은행감독원의 지적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94년말까지 여신을 줄여나가고 한보로부터 3백여억원을 회수했기 때문인 것 같다』 ◇金景梓 국민회의의원 ―증인이 서울은행장 재직시 한보에 대출을 많이 안해준 것은 잘한 일이다. 한보의 사업성을 어렵게 봤기 때문에 그랬는가.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다』 ▼ 토개공 보상금 믿어 ▼ ―증인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그런데 한보대출을 거부해 권력층으로부터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데…. 『저는 마음만 믿고 살았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서울은행이 증인이 은행장에서 물러난 지난해 11월 이후 자금사정이 악화된 한보에 세차례에 걸쳐 4백77억원을 더 대출해 주었다. 외압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만일 그당시 행장이었다면 대출을 해주었겠는가. 『11월에 지급보증을 한 1백억원은 내가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서울은행이 담보로 잡고 있는 한보의 부산공장 일부가 토개공에 수용돼 1백30억원 가량의 보상금이 나오기로 돼 있었다』 ―그러면 나머지 3백77억원의 대출은 무리가 있다고 보지 않는가. 『정리상 그렇게 된 것 같다』 ▼ 「투서 원망」 말한 적 없어 ▼ ◇金學元 신한국당의원 ―정태수씨를 만난 적이 있나. 『전무로 있을 당시 은행에 인사하러와 2∼3분간 만났다. 작년말 한보 부도직전 한차례 더 만났다』 ―작년말 구속됐을 때 「업체로부터 돈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치부를 위해 쓴 것은 아닌데 투서가 난무한다」고 세태를 원망했다는데….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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