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멀티」기기,대기업도 『보따리 장수』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2분


[정영태 기자] 대기업이 판매하는 멀티미디어기기라고 해서 안심하고 구입하다 보면 낭패하기 십상이다. 보따리장수처럼 팔고 나면 그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무분별하게 멀티미디어사업을 벌였다 정리하면서 소비자들이 보는 피해가 크다. 비싼 값에 산 기계지만 꾸준히 돌려볼만한 소프트웨어도 많지 않고 그나마 얼마 안가 단종되면서 활용할만한 소프트웨어를 팔지 않으면 깡통에 불과하기 때문. 의욕은 앞섰지만 사업에 실패해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안겨준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LG전자. 이 회사는 지난 93년 「하이미디어」라는 슬로건 아래 「3DO」게임기와 「CD―i」(대화형CD)사업을 시작했으나 3DO사업포기와 CD―i사업의 침체라는 결과를 맞았다. 4년동안 5만대도 판매하지 못하고 지난해말 3백억원의 적자만 남긴채 사업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LG는 지난해말 사업정리단계에 접어들면서 3DO기계 5만대를 구입한 소비자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타이틀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는 올해들어 사업부문별로 배정한 예산에서 타이틀제작 투자비는 슬그머니 빼버린것. 앞으로 3DO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돌려보려면 외국에 나가서 사와야만 한다. 3년간 6만3천대를 뿌린 CD―i도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부담이 됐다.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한 LG입장에서는 산더미같은 적자를 안게 된 것만으로도 억울하겠지만 판매에만 관심을 쏟을뿐 팔려나간 상품을 잘 쓸 수 있게 하는데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이 역시 쓸만한 소프트웨어가 없는 것이 큰 문제. CD―i를 조건부 임대방식으로 들여놓은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이 보고 배울만한 소프트웨어가 없어서 한구석에 방치해놓은 경우가 상당수다. 삼성전자는 지난 93년부터 추진해왔던 32비트 멀티미디어게임기 사업을 지난해말 공식포기했다. 세가사와 제휴해 내놓은 32비트게임기 「새턴」이 반응을 얻지 못하면서 최근 사업을 중단했다. 삼성전자측은 『32비트 비디오게임기가 호응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소비자들은 16비트 구형 게임기로도 만족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조금 다르다. 32비트게임기 가운데 새턴이 인기를 끌지 못해 세가가 사업을 정리하자 따라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 삼성전자의 유아용 컴퓨터인 「피코」도 상당수 팔려나갔지만 지금은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없어 활용도가 낮은 기계가 됐다. 현대전자도 「CD비전」의 실패를 겪었다. 지난 93년부터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펼쳤던 이 제품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독자적인 규격이라서 요즘 나오는 CD롬 타이틀을 십분 활용할 수 없는 것이 주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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