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인쇄문화 적극 육성하자

  • 입력 1997년 2월 12일 20시 22분


올해는 문화체육부가 제정한 「문화유산의 해」다. 우리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가꾸는데 적잖이 소홀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쇄문화라고 하겠다. 인쇄문화는 우리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세계에 널리 자랑할 수 있는 부문이다. 우리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있다. 목판인쇄술의 발달은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팔만대장경」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유엔에 가입했을 때 우리가 기증한 것도 「월인천강지곡」 인쇄동판이었다. 1234년 「고금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직지심체요절)」도 1377년 인쇄됐으니 서양의 금속활자 발명보다 70여년이나 앞선 셈이다. 이처럼 훌륭한 인쇄문화가 있었는데도 보존과 홍보를 소홀히 한 탓에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고 서양 문헌에는 아직도 구텐베르크(1398∼1468)가 금속활자 발명자로 기록돼 있다. 더구나 그동안 인쇄문화 육성을 게을리한 탓에 오늘날 우리 인쇄부문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심각한 기술인력난과 자금난을 겪고 있는데다 인쇄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인쇄업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해제됨으로써 더욱 어려워졌다. 물론 인쇄문화를 중흥시키려는 인쇄인들의 노력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계속됐다. 산(産)학(學)연(硏)을 연계한 연구개발을 위해 「대한인쇄연구소」를 설립했고 원가절감과 경쟁력강화를 위해 인쇄공단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인쇄박물관 건립과 국제교류 증진을 위해서도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제는 관계당국이 나서고 국민 모두가 인쇄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적극 동참해야 한다. 「직지」는 되찾아와서 원래의 인쇄장소인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해야 한다. 관련법의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쇄박물관 건립이나 인쇄공단 조성사업도 시급하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수도권의 4년제 대학에 인쇄학과를 설치하고 관련법과 포상제도상의 출판과 인쇄를 분리 정비하고 인쇄연구소에 대한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인쇄업종에 대한 자금지원과 세제혜택도 다른 문화산업의 수준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이제는 정신문화의 요체인 인쇄문화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육성해야 한다. 인쇄문화를 중흥시켜 인쇄종주국의 영예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유산의 해」에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일이라고 확신한다. 박충일<대한인쇄문화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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