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컴퓨터게임

  • 입력 1997년 1월 6일 20시 12분


『이번 방학에는 무엇을 할 생각이지』 겨울방학을 시작할 무렵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그러나 아이의 방학이 시작된 며칠 뒤 그 때 아이의 대답이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얘가 방학 동안에 무얼 할까」 영 궁금하기도 하고, 빵점 짜리 아빠라는 오명을 쓸 것도 두려웠다. 그러던 차에 아이의 책상 앞에서 방학 중 생활계획표라는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래 이걸 보면 되지. 아침식사 휴식 공부 휴식 놀기 점심식사 휴식 오락 휴식 컴퓨터 휴식 저녁식사 TV시청 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아이를 불렀다. 『이거 네가 만든 거니』 『예』 『이대로 할거야』 『예』 당당하기 그지 없다. 『여기 오락하고 놀기가 있는데 어떻게 다른 거지』 『오락은 컴퓨터 게임이구요, 놀기는 친구들과 노는 거예요』 『친구들하고는 무엇을 하며 놀건데』 『컴퓨터 게임이나 뭐 그런거요』 『휴식은 쉬는 건데 왜 이렇게 시간이 길어. 30분씩이나 되네』 『그건 쉴 때 컴퓨터 게임을 할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그 정도는 되어야…』 결국 아이의 하루 생활은 대부분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는 셈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게임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집도 많다. 그렇지만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을 버린다고 단정하기 전에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만화책 딱지치기 연날리기에 매달렸다. 해가 저물도록 딱지를 쳤고 그리 조명도 좋지 않은 골방에 앉아 하루 종일 만화책을 넘겼다. 그렇다. 만화책과 딱지가 컴퓨터 게임으로 바뀐 것밖에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노는데 집착하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이 달라졌다. 요즘 부모들은 옛날 부모들에 비해 자녀교육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다고나 할까. 내 생각으로는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아이들이 포악해지고 정신이 이상해질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화책을 보고 딱지를 쳤던 우리들 중에 폭력배가 되거나 도박꾼이 된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방학때라도 컴퓨터 게임은 보통 때 학교가 끝나는 시간인 오후 3시 이후에만 한다」. 이것이 우리 아이와 최종적으로 타협한 방학중 생활계획이다. 황 인 홍<한림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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